서울 골목 투어 열 다섯번째
나의 영원한 화곡동 집
내가 기억하는 집은 화곡동에서 부터였다.
지금도 버스가 다니는 화곡동 2차선 도로 옆 건물과 집이 한번에 붙어 있던 상가주택이
나의 기억속의 첫 번째 집이다.
그 즈음 화곡동은 지금 의미로는 계획하에 만들어진 신도시였다.
땅값은 싸고 서울 중심에서 멀어서 아마도 베드 타운 형태로 소시민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곳이었지 싶다.
새로운 동네에 다들 비슷비슷한 시기에 비슷비슷한 주거 형태로 진입한 사람들이 모여서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다 알고
때마다 옆집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하고
골목 내에서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바삭하고
어느 집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지와 잘생겼는지 이런 사소한 내용까지 공유하던
아마도 아버지 이름으로 소유한 처음 집이었던
화곡동 105-**번지 골목에서의 삶은 이제는 아스레한 추억으로 남았다.
비오는 날을 빼고 학교로 갈 때는 높은 계단을 내려가는 길을 택했었다.
비오는 날은 미끄러질까 무서워서 가파른 계단을 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겁장이에 안전빵 주의자이다.
숨을 깔딱거리면서 꽤 많은 계단을 내려가고 나면 학교 후문이 보이고
모든 것을 다 파는 그 시절 나의 유니버스 문방구가 보였었다.
아무 것도 살 것이 없는 날도, 무언가를 살 돈이 없는 날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던 문방구 아이 쇼핑 시간은
등굣길 아침에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계단을 다시 올라 집에 오는 날은 가위, 바위, 보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날이었다.
혼자 오르기에는 너무 높고 친구랑 함께면 오를만한 그 계단이 인생과 비슷한 것인 줄을 그때는 몰랐었다.
친구가 없이 혼자 집으로 와야하는 날에는 평탄하지만 조금은 먼 시장앞으로 돌아 돌아 왔다.
엄마와 손잡고 시장 보기를 하던 곳
뜨끈한 손두부도 사고 닭 한마리도 사고(통닭일때도 있었다.) 계란 한판도 사던 곳
엄마가 없는 하교길에는 몰래 설탕 뽑기도 하고 형광색 쫀드기도 사먹던 그 길을 어찌 잊을 것인가?
엄마는 불량식품이라며 실눈을 뜨고 싫어하셨지만
아마 간식챙겨줄 돈이 없었을것이었다는건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다.
시험을 망치고 등짝 스매싱이 겁나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빙빙 돌고 돌았던 그 길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나에게 집이란 여전히 화곡동 그 집이다.
누구든 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을 듯 하다.
가장 마음 편했던 시절의 그 곳이 오늘 문득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복숭아를 엄청 좋아하셨던 친정 어머니가 생각나서였을까?
어제 산 작은 복숭아가 꽤 맛나서 그랬을 수 있겠다.
앉은 자리에서 두 개를 깍아서 눈깜짝할 사이에 먹었다.
복숭아 같이 달달했던 화곡동에서의 내 삶이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골목을 걸을 일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