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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스물 세번째

오목교역 2번 출구에서 파리공원으로 직진하다가

by 태생적 오지라퍼

가고 싶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길이 있다.

얼굴을 보고 싶지만 얼굴을 보고나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 것을 알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지 않는 길이 있다.

오랫동안 양천구에서 살았다.

대학 이전에는 강서구에서

결혼해서는 잠시 시댁에서 살았고

그리고는 늘상 양천구 목동에서 살았다.

친정집을 중심으로 동생들도 십 분거리 이내에서 왔다갔다

서로의 육아를 봐주고 맛난것을 나눠먹으며 그렇게 이웃 친척으로 친밀하게 살았다.

그래서 오목교역 주변 3Km 반경은 모두 다 나의 직장 출근길이었거나 산책길이었거나 그랬었다.


지금은 그 위치에 친정집도 나의 집도 없지만 아픈 동생집이 있다.

동생을 보러 가는 길이 가야만 하는데 가고 싶은 마음 반 피하고 싶은 마음 반인 곳이다.

가장 미인이었던 딸 부잣집 셋째 딸인 동생은 10여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병에 걸렸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채 깨닫지 못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았고

(파킨슨병은 5년 정도는 착한 시기를 보낸다고 하더라. 일반적으로)

원래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므로 딱히 걸음걸이가 느려진 정도를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었고

그 시기는 각자 자식들의 진로와 대학 진학 등,

그리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는 IMF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긴 상황이라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정신이 없었을때였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나와 결이 전혀 다른 동생의 삶에 그다지 많은 관심이 있지 않았음을 이제서야 고백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많이 나빠지기 전 동생과 몇 번의 여행을 다녔고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고

맛난 음식을 나누어먹었고

동생의 인생도 쉽지 않았음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었지만

이제와서보면 그것도 턱없이 부족했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를 했었어야 한다.


부모님께서는 오래 아프셨었다.

2020년 친정 어머니를 보내고 2022년 친정 아버지를 보내고나서

동생은 눈에 띄게 병세가 나빠졌다.

그리고 2022년 코로나 19에 의한 급성 폐렴,

중환자실 2개월 입원에서 생긴 엉덩이 욕창으로 인한 괴사,

파킨슨병 악화로로 인한 근육 강직과 움직임 불가능으로

콧줄과 소변줄을 끼고 가정용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나와 눈도 못마주치고

목소리를 듣고 가끔은 알아보는 듯도 하나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2개월 동안 동생을 살려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었으나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동생에게 아프지 않은 휴식을 달라고 기도한다.

오늘, 동생을 보고 돌아왔다.

익숙했던 오목교역 근처 거리가 이제 나에게는 걸어다니기에 마음이 몹시 힘든 장소가 되었다.

추석 다음날은 친정 아버지 생신날이고,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의 납골당 방문 예정일이다.

명절이라는 시기가 멀리 떨어져있던 가족을 즐겁게 만나는 기간이지만

만나면 더욱 가슴이 아파지는 상봉도 있다.

집을 나서기 힘든, 시작과 끝이 힘든 산책도 분명 있는 법이다.

오목교역 2번 출구로 나가서 파리공원까지 직진해서 길을 건너면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지막을 보내신(주로 누워계셨었던) 집이 보이고

그 옆으로 지금은 누워있는 아픈 동생의 오래된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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