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75
첫 실험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아.
하루만에 기온이 달라져서 나는 이제 콧물이 나오기까지 한다.
알러지성 비염을 수십년 달고 산 나의 코 점막이 하루만의 기온차에 잘 적응해줄 리가 없다.
손수건을 달고 사는 선생님이라고 불리웠었다. 신규교사때부터...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여전히 환절기는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 예감한다.
더위도 이제는 쉽지 않고 추위는 여전히 제일 참아내기 힘든 일이고
환절기는 눈물 콧물과 함께이니 도대체 나는 어느 계절을 제일 편하게 보낼 수 있을려나 모르겠다.
올해 처음 느낀 더위의 역습이 무섭기만 하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는 이제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무섭다.
월요일은 즐거운 3학년과의 주당 1시간 수업일이다.
그런데 3학년 야구부 학생들이 부산에서 졸업 전 마지막 시합에 출전하고 있다.
오늘 시합을 이겼다고 방금 단톡에 올라온 것으로 보니 월요일 수업에는 당연히 참석이 힘들겠다.
수행평가가 예정되어 있는데 할 수 없다.
야구부만 따로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3학년은 고등학교 진학 성적을 제출하는 시기가 있어서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일단은 야구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학교에 돌아오면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들끼리의 실험을 진행하면 된다.
그들은 더욱 즐거워 할 것이며 그 실험 시간은 몹시도 시끄러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제 드디어 길고 길었던 기상학 파트 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3학년의 천문학 파트는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기상학 부분에 시간을 더 할애했다.
마무리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새로운 실험을 준비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2022 교육과정에는 새로운 자율이라는 주당 1차시의 수업이 진행된다.
학교에 교과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는데 학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할수 없이 교사별 수업 시수에 많은 차이가 나지 않도록 융통성 있게 자율교과를 운영하려 하는 듯 하다.
그 자율시간에 활용할 목적으로 <기후변화와 우리>라는 교재를 만들었고
나는 그 내용 중 한 가지 실험을 선택하여 월요일에 진행하려 한다.
아직 내용은 비공개이므로 이곳에 자세히 적지는 못하겠지만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온도 변화 측정 실험이다.
준비물도 실험 과정도 간단하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실험이므로
머릿속으로 생각한 내용과 그 결과가 일치하는지는 월요일 3학년 3반의 실험이 끝나야 알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실험의 필요성과 개연성을 알려주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실험 결과 못지않게 또 관심이 생기는 한가지가 있다.
학생들의 그래프 작성 능력과 이해도를 살펴보려 하기 때문이다.
과학 수업 내용 중 그림 못지 않게 중요한 그래프 이해 능력을 점검해보기 딱 좋은 활동이다.
지구과학 부분의 그래프들은 사실 축이나 간격 설정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단순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직접 그려보는 활동을 해보기는 쉽지 않다.
이번 실험은 시간과 온도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간단한 그래프 두 종류이므로
아날로그적으로 그래프 용지에도 결과 그래프를 그려보고
디지털 기기를 써서 넘버스라는 프로그램으로도 그려서 두 가지 그래프를 비교해볼 예정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서로 상반되고 모순된 수업 방법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주는 방법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를 선택하는 것은 학습자에게 맡기려 한다.
나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나는 한 가지 방법밖에 못해서 할 수 없이 오로지 그 방법만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하여 빠르고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갈 것이냐
버스 한번을 쭉 타고 시간은 더 오래 걸리지만 앉아서 편하게 목적지에 갈 것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두 가지 방법을 다 알면 나의 컨디션과 문제의 상황을 고려하여 해결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에듀테크를 한 번 시도해보자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고 나쁘다, 필요없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성장이 될 수 없다.
월요일 실험 활동이 매우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하다고 해도 첫번째로 시도하는 실험은 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무언가 변수가 나타날 수도 있고 의외로 안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이 실험 수업의 묘미이자 어려움이다.
생각보다 변수가 많은 실험이었다
역시 꼼꼼하게 작성되지 않은 자료를 볼때부터 걱정이 되었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가 않았다.
그래도 세 번의 새로운 시도를 거쳐 이제 정리가 될듯 하다.
수업 관찰겸 의견을 나누어준 멋진 후배교사님과 실무사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