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아들 녀석 유감
내가 부모님께 퉁퉁거렸던 꼭 그만큼 받고 있는 중
내 인생을 돌이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하나뿐인 아들 녀석을 낳은 일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들 녀석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 나를 비롯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다 그럴 것이니 나만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하나뿐인 아들 녀석과 가장 마음이 상하는 일 한 가지가
어젯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 새벽에 벌어졌다.
어제 아침 7시에 주말 축구를 위하여 집을 나서면서
분명 저녁때쯤 들어오거나 저녁만 간단히 먹고 들어올거라 했다.
나는 식사 준비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위해서(아들이 없으면 대충 먹는 나쁜 습관이 있다.)
집에서 밥을 먹는지 아닌지에 대한 예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저녁 먹고 가요> 라고 톡이 온 것이 점심 즈음이다.
내일도 일정이 있다했으니(요새 일요일은 매번 썸녀와의 데이트가 있는 눈치이다.)
저녁 먹고 10시까지는 오겠지 싶었다.
그런데 연락두절이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의 나쁜 습관은 술을 먹으면 톡을 보지도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친구들과 있는데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라는 답변이나
나는 가끔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도 이를 안보니 답답한 경우가 몇번이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들 녀석이 귀가하지 않으면(특히 차를 가지고 나간 경우)
나도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는 이상한 병이 있다.
일요일은 나도 일찍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 있는데
아들은 오지않고 연락도 없고 나는 이상한 병이 또 발동하여 잠을 못자고 말똥말똥했다.
이번 주 <최강야구>가 가슴 아픈 패배를 당해서 더 이상 돌려볼 영상도 없는데 말이다.
12시쯤에야 대리 기사를 불러서 집에 가고 있다는 톡이 왔다.
이제 들어오기만 하면 자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디서 오는지 시간이 꽤 걸렸고(그 시간 서울 어디에서도 30분이면 주파 가능이다.)
차량이 입차했다는 알람톡이 오고 10분 정도가 지나도 아들 녀석이 주차장에서 올라오지를 않는거다.
술이 많이 취해서 주차장 한 구석에 누워 있는 건지
대리기사와 요금 시비가 붙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지하주차장을 내려갔다 왔더니 그 사이에 집에 들어온 아들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기를 못 믿어서 찾으러 왔냐고,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고, 주무시고 있으면 되는데 왜 안 주무시는 거냐고...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딱 한 마디만 했다.
“너를 못믿는 게 아니고 나는 술을 못믿는다고.
술 때문에 벌어지는 별별 일들이 다 있음을 나는 이미 많이 보았다고.
술이란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고... ”
그리고 누웠지만 오랫동안 뒤척 뒤척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에게처럼 와이프에게도 저러면 안 될텐데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는 오늘 나는 일찍부터 오래전에 약속된 가을 나들이 일정을 다녀왔다.
아직 단풍은 제대로 다 들지는 않았으나 가을 소국들이 만개했고 아침 보름달이 운치있었고
친구들에게 아들 흉을 실컷 보고 오니 화가 조금은 풀리기도 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아들 녀석은 미안한 마음이 조금을 들었는지(술이 깬 것일게다) 슬슬 내 눈치를 본다.
웬일인지 고양이 설이의 눈물도 깨끗이 닦아주었고(눈물 자국만 없으면 세상에서 제일 이쁜 고양이이다.)
고양이 똥도 깨끗하게 치워두었고
평소 잘 안아주지 않던 고양이 설이를 연신 껴안고 애정을 표현하고 있더라.
그리고는 멋을 잔뜩 내고 향수도 뿌린 채 썸녀를 만나러 가는 듯 집을 나섰다.
어디가냐고, 언제쯤 들어오냐고 묻지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나가면 안전이 무지 걱정된다는 것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야지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부모님 속을 아프게 많이 했을텐데 이제야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꾸안꾸처럼 멋을 내면 뭐하냐?
어제 어디를 다녀왔는지 차 외부가 몹시 더럽던데...
나 같으면 10점 만점에 5점 감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