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교는 기말고사 기간이거나 기말고사를 마쳤다.
그리고 나면 학생들은 크리스마스 기분도 내고 콧노래를 부를 시간이다.
물론 선생님들은 학기말 생기부 작성 및 마무리로 정신이 없다만...
그런데 올해 우리학교는 다르다.
화장실 및 창호공사로 개학이 9월 첫주 지나서였으므로
법정 수업 일수를 마치려면 아직도 한 달 이상 남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기분은 조금 내고 싶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내가 준비한건 아니다) 학급 대항 구기대회이다.
학생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행사이다.
봄에는 체육대회를 했고 이제는 날이 추우니 체육관에서 학급 대항 구기대회로 운영한다.
그래봤자 한 학년에 4학급이니 3번만 시합을 하면 우승 학급이 결정되게 되어 있다.
1학년은 피구, 2.3학년은 배구 종목을 진행한다. 오늘은 그 첫날이었다.
피구는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 대항 시합에 나갔던 경험이 있다.
힘이 크게 세지는 않지만(그때는 한 덩치했었다.)
여학생치고는 달리기가 조금 되고(100m 최고 기록은 16.5초이다. 중학교 3학년 체력장 공식 기록이다.)
공 던지기와 피하기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아마도 뽑힌 것 같다. 아니다. 하겠다고 나선 여학생들이 없었을수도 있다.
연습하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고 운동장에 미끌어져서 무릎팍에 피를 보기도 했으나
학교 대항 시합에서 요리 조리 잘 피해서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고 역전패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리고는 그 천추의 한을 교사가 되어서 학급 대항 여학생 피구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멋지게 풀어버렸다.
무려 한 학년에 17반이 있었던 시기였다. 17반 중에 1등... 멋졌다.
물론 우리 반 남학생들의 공이 컸다.
매일 아침마다 함께 연습해주었었다.
매번 여학생들 공에 맞았고 날쌔게 피해주었었다.
그러므로 스포츠에서는 선수 못지않게 같이 연습해주는 파트너가 무지 중요한 법이다.
배구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그 맛을 알게 되었다.
배구부가 있던 학교였다. 그리고 맞수 학교와 정기전이 3월말에 열렸었다.
입학하자마자 배구룰을 익히고 응원가를 배우고 그리고는 정기전 응원을 장충체육관으로 갔었다.
소속감과 애교심을 불러일으키는데는 배구경기 하나면 충분했고,
스파이크를 하러 점프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한 마리 비상하는 새를 보는 듯 멋짐을 느꼈었다.
그리고는 배구 선수들과 함께 하는 학급대항 배구 대회가 있었는데
여학교다보니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학급 대표에 또 끼이게 되었더랬다.
물론 손이 무척 아팠지만 서브와 리시브 연습을 몇일 동안했다.(멍이 들어 퍼렇다못해 보라색이 되었었다.)
그런데 시합전 생각으로는 배구 선수들은 살살 넘기기만 해줄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시합이 시작되니 선수 특유의 승부욕이 불타오르는지 정식 시합에서처럼 세게 공이 날라다니더라.
이게 아닌데 저 공에 맞으면 안되는데 했는데
결국 나는 마지막에 상대팀 배구 선수의 스파이크를 눈에 맞고 잠시 쓰러졌다가 실려나왔고
눈탱이는 밤탱이로 금방 변했다.(별이 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래도 배구가 아주 싫어지지는 않았다.
한때 남자 배구가 인기 절정일 때가 있었는데(장윤창과 한장석 선수를 좋아라했었다.)
어린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대학생이던 제자들과 잠실체육관으로 구경도 갔을 정도였다.
아들 녀석은 이기는 팀이 내팀이라는 신기한 마인드를 가지고 처음보는 배구 시합에 몰두했었다.
아들 녀석에게도 분명 나의 스포츠 사랑 DNA 가 전달되었음이 분명하다.
작년 이맘때 역시 학급 대항 배구 시합이 열렸었다.(나는 작년까지 담임이었다.)
1등 학급에는 15만원 상당의 간식비가 걸려있는 시합이었다.
첫 시합을 살펴보니 우리 반 야구부 남학생들의 몸집이 작아서 1등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야구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는
동기 부여랑 격려 차원에서 한마디를 던졌다.(실상은 절대 1등을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1등하면 15만원 상금만큼 내가 더 보태서 고기 먹으러 가자>
그런데 말이다. 놀랍게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해서 우리 반이 1등을 해버린 거다.
내뱉은 말을 지켜야지 어쩌겠나.. 무제한 고기집으로 출동할 수 밖에...
올해는 담임이 아니니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오늘 2학년 배구 시합을 구경하였다.
멋지게 그리고 힘으로, 스파이크로 결정지으려 하면 아웃이 되거나 네트에 걸리게 된다.
힘을 빼고 오로지 네트를 넘기는데만 집중하면, 코트 안에 공을 넣기만 하면 이기게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스포츠는 통하는 것이 있다.
힘을 빼고 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다.
힘으로 결정날 것 같은 스포츠이지만 힘을 너무 썼다가는 아웃볼이 되기 일쑤이다.
우리 삶도 그럴지 모른다.
힘을 빼고 접근하는 것이,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만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이 두배는 힘든 일이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잘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2주일 정도는 체육관에서의 함성소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특별히 응원하는 학급이 없으니(학년 부장이나 어느쪽에도 치우치면 안된다.) 즐겁게 관람만하면 되겠다.
물론 나의 최애 <최강야구> 시청보다는 쫄리지는 않겠지만(어제 덕수고와의 팽팽한 투수전 재미났다. 다음 주가 더 기대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기도 하고 치열하기도 하니
잘하는 반에는 칭찬을, 잘 못하는 반에는 응원을 보내주면 되겠다.
전생에 나는 아마도 체육교사였을지도 모른다.
과학교과 다음으로 체육이, 그 다음으로는 음악이 취향에 맞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그리 흘렀는데도 아직도 피구와 배구라는 바로 그 점이다. 다른 스포츠도 많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