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106
과학관과 박물관의 차이
두 달 전부터 준비했던 해양 생태 캠프 날이다.
더 늦으면 춥기도 하지만 2학년의 기말고사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고
조금 더 빨랐으면 3학년 각종 학교 면접일과 겹칠 것 같았고
그래서 정한 날이었는데 춥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컨디션이 바닥이다.
배도 아프고 이미 목도 따갑다.
오늘 캠프는 사실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지만
지난번 환경 골든벨에서 1등을 한 학교에게 준 상금으로 급준비된 것이다.
차량 대여비는 학교 예산을 추가로 지급받았다.
상금은 학교 발전기금으로 처리되어 오늘 행사에 모두 사용하여야만 한다. 생각보다 부담스럽다.
일단 출발전 편의점을 털어서 간식을 준비했다.
내 돈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아끼는 마음으로 1+1을 중심으로
아침을 안먹고 올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빵류와 음료수 그리고 사탕과 단백질바를 구입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국립생물자원관이다.
미리 해설사를 신청해두었더니 전시물에 대한 안내를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이해는 결국 기후 위기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고
생물 분류의 기준과 다양한 생물종의 보존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기본 마인드를 정립해주는데 꼭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한 장소이다.
식물과 동물 표본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다. 어린 것과 작은것은 모두 이쁘다는 점이다.
작은 식물과 동물들은 표본도 너무 이뻤다.
특히 요새 고양이를 키우는 나는 어린 삵의 표본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비록 털 색은 다르지만 눈이랑 코랑 너무도 우리집 고양이 설이랑 비슷했다.
고양이와 삵은 모두 같은 고양이과에 속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친척 관계인 셈이니 비슷한게 당연하다. 종속과목강문계를 기억하시나요?
과까지는 매우 비슷하다. 구별못하는게 그다지 창피한게 아니다.
다음번 방문지인 월미도로 이동하여 해물칼국수, 회덮밥, 해물파전을 먹었는데
아이들은 해물파전은 그리 좋아하지 않더라. 해물칼국수가 그 중 제일 나았다.
너무 아저씨 취향의 음식을 시켰나하고 잠시 후회를 했다. 그렇다고 월미도에서 돈가스를 먹기는 좀 그렇지않은가?
식당 바로 앞에 이번 주에 새로 오픈한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였다.
새롭고 멋진 구조의 건물에
방문객도 많고(이 추운 날씨에도 많더라)
옆으로는 인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위치가 주는 메리트가 돋보이는 그곳을 돌아보고 막 문을 열어서 어수선한것 빼고 무언가 2%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박물관과 과학관의 차이점인 듯 하다.
과학관은 내용학에 몹시 충실하다.
전적으로 교육이 우선시 되는 구성이다.
새롭거나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을 작은 글씨로라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계속 제공한다.
그런데 박물관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공간과 그 생각을 이끌어내는 기록물 배치에 중점을 두는 듯했다.
아까운 넓은 공간이 그냥 버려져있는 듯 보이는데(그것은 내 생각이다.)
그 공간이 바로 전에 본 전시물을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묘한 시간을 준다.
여유와 여백이 주는 사고의 시간이다.
박물관과 과학관에서 느낀 공통점의 하나는 아직도 우리나라 체험활동과 교육은
유아기에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곳 모두 중학생 이상의 관람객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아빠 이거 뭐야? 이것은 또 뭐야?> 라고 계속 물어보는 아들 녀석에게
<그건 상어야, 문어야, 낙지야>를 웃으며 알려주는 아버지의 노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알아들을리는 만무할 나이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박물관이나 과학관 방문은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기에
부모님들의 만족감에서 비롯된 활동이다. (오늘 멋진 일을 했다고 매우 뿌듯해할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그러니 너무 어린 아기때 수준 높은 곳을 데리고 가지는 말자.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 자발적으로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 것이 맞는거다.
그때 학원과 성적에 너무 몰입해서 과학관이나 박물관 가는 시간조차 아깝게 생각하는 그런 부모님이 되지는 말자.
그리고는 춥디 추운 인천 앞바다를 보고(파도는 잔잔했는데 역시 바다는 여름이다. 겨울은 너무 쓸쓸하다. 사진으로는 멋지다만.)
월미도 모노레일은 주말이라 벌써 예약 마감이라 못타고
바로 옆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이 추운날 디스코 팡팡과 대관람차를 탔다.
역시 10대는 용감하다.
아마 내일은 근육통을 호소할것이다만.
물론 나는 타지 않았고 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희망 학생들만 탄 것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몹시 추웠고 어지러웠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다행히 길이 안 막혔다.)
환경과 생태를 고려하여
설탕을 넣지 않고 만든 유기농 딸기잼과 토마토잼을(오픈하면 가능한 빨리 먹으라고 안내했다)
오늘 행사의 기념품으로 나누어주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장고끝에 고른 기념품이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데
달지않아서 그 깊은 맛을 알까는 모르겠다.
너무도 춥고 힘든 날이었지만(몸과 마음이 모두 얼어붙었다.)
이제 나는 과학교사로서 할 수 있는 소임을 다했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니다, 월요일 과학창의재단 지원 과학자 특강이 남았구나. 그것만 잘 되면 올해 과학행사는 끝이다.
이제 시니어 봉사단으로나 아니면 소일거리 산책으로나 과학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몇개 안남은 미션을 클리어하는 중이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다.
기말고사도 봐야하고(그전에 출제를 완성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우리 수업지도자료도 수정해야하고(귀찮은 일이다만 애써 의미부여를 해본다.)
제일 큰 행사인 학교 축제도 진행해야 한다.
그러니 제발 감기가 심하게 오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집에 오니 따뜻하여 노곤하고
콩나물밥에 달래장 비벼 저녁까지 먹으니 눈이 절로 감겨온다.
오늘 글의 반응은 내일 아침에나 확인이 가능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