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직도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가슴이 뛰는 일이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이지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나의 일상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는데(네시간의 수업, 중간 중간 업무)

아마도 이제 학교를 떠난 선배와 지인들 혹은 후배들은 조금은 달랐었는지

새해 인사와 함께 정년 퇴직 축하 톡을 보내주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아직은 학교 일정도 24일이나 남았고(이제 1일이 되었으니 23일인가?)

1년 중 제일 큰 업무인 학교 축제도 남았으니

사실 별다른 감흥이 오지는 않았지만

연말에는 늘상 그랬듯이 책상 정리를 하였고

버릴 것은 버리고 꼭 가져갈 것만 챙겨두었다.

버리는 일에는 자칭타칭 1등이다.

우리 학교 책상 중 내 책상이 가장 깨끗하다고들 이야기한다. 버려서 그렇다.

(후배가 선물해준 잘 신었던 실내화는 버렸고

의자 위 방석은 24일에 버릴 예정이고

비상시 대비를 위한 조그마한 전기 난로는 플리마켓에 낼 것이다.)


아침에 교내 메신저를 보내긴 했다.

<연말을 맞아 그리고 축제 때 진행하는 플리마켓을 맞이하여 책상과 사물함 정리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라고 말이다.

무언의 압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부 물품을 내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3년간 해보니 그렇다.

이번에는 물품 제공하는 분들을 기록해서 플리마켓 장소에 감사 표시를 할까 한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먼저 물품을 하나 고르는 기회도 제공할까 한다.

우리의 플리마켓 사용 규칙은 단 하나의 물품만 골라서 가져가는 것이다.

돈을 내고 사지 않는다.

말 그대로 득템의 기회이다.

기부 물품은 주로 학생 대상의 문구류가 가장 많으나

옷도 제법 있고(옷을 걸어둘 행거를 살 예정이다.) 다양한 생활용품들도 있다.

몇번 해보니 물품을 기부하는 사람은 기부만 하고

가져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인 약간의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서

올해는 기부자들은 먼저 초대해서 원하는 물품을 딱 하나만 고르는 기회를 주려 한다.

오프닝 파티인 셈이다.

어제 나는 안부를 묻는 많은 단톡들에 나의 마지막 업무라면서 플리마켓 참여를 부탁했었다.

얼마나 물품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수신자 부담 택배로 보내달라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그다지 넉넉지 못한 환경을 알리고

나의 마지막 선물임을 강조하였으니

이번에 무언가 물품을 보내주는 지인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는 앞으로 더더욱 잘해야겠다.

퇴직 이후에 지인과 네트워킹 그룹의 대대적인 재편성이 이루어진다더라.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그 척도 중 한가지가 될 수 있겠다.

플리마켓은 새 물품만 받는 것은 아니다.

사용은 했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는 물품은 꼭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 기부 물품이 생각나신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된다.


학교에는 대부분 교사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반행정직 공무원들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은 1월 1일자 발령이 난다.

교사는 3월 1일자 발령이다.

어제 행정실의 두 분이 새로운 학교로 전보 발령이 나서 마지막 근무날이었다.

2년 정도 함께 한 분들이었고 사실 행정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학교 예산 사용 및 행사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두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축제를 마무리하고 20일쯤에 나는 퇴임 기념 자그마한 선물을 돌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인데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을 드리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이름이 박힌 수건 이런 것은 딱 질색이다. 샌드위치나 컵과일은 너무 식상하다.)

오랫동안 우연히 행사를 같이 하던 유기농 스마트팜의 과일잼이 생각났다.

내가 직접 만들어도 봤고 교사 연수로 농장에 가서 작물 키우는 것도 봤던

정직한 농부님의 설탕을 넣지 않은 유기농 과일잼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물론 내돈 내산이다.

문의해보니 낱개의 선물포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은 토마토가 제철이 아니라 오히려 딸기잼이 더 싸고 맛있다 한다.

모든 것은 제철이 최고인데

지금이 딸기가 제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만 딸기잼과 토마토잼을 주문해두었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2년이나 함께 했던 분에게는 그 선물을 못드리고

20여일 함께 하는 새로 오시는 분에게 그 선물을 드려야 한다는게 말이다.

어제 2분 것을 먼저 챙겨서 가져다 드리면서 간단한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더니 마음이 편하다.


7일에는 과학과 모임이, 9일에는 2학년부 모임이, 10일에는 밴드부 연습이 예정되어 있고

이것들은 이제 내 인생에서 마지막 회식과

연습 지도가 될 것이다.

아니다. 밴드부는 추가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어제 아니 오늘인가

새해가 되자마자 학생들

톡이나 인스타 다이렉트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이만하면 교사로서는 행복한 삶이었다.

그걸로 되었다.

주변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도, 내 개인적으로도)

아직도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조금은 가슴이 뛰는 일이다.

이제 떡국을 맛있게 끓여보자.


(참 어제 내 브런치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100명이 넘었다. 너무 기뻤다. 좋아요 갯수가 늘어난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읽어준다는게 어디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