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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3

새해 첫날 소감문

by 태생적 오지라퍼

새해 첫날이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벅차게 시작했다가는 곧 지치게 되고

과한 에너지 상태로 시작하는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어렸을 때의 나는 새해 첫날에는 엄청 일찍 일어나서(난 잠꾸러기였다. 소싯적에는)

이부자리를 칼각으로 개어둔 후(전생에 여군이었나했다.)

몇 벌 없는 옷장을 정리하고(예나 지금이나 옷과 책상 정리가 모든 일의 기본이다.)

오전부터 <다이어트와 열공>을 목표로

성문기본영어나 해법 수학과 정석풀어보는 특별한 시작을 하곤 했다.

(정석은 꼭 집합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집합도 다 끝내지 못하는 도돌이표 인생을 살았다.)

동생들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고

부모님께는 더할 나위 없는 착한 딸 코스프레를 했는데

이런 과한 에너지 상태는 작심삼일이 되기 딱이었다.

3일이면 지쳐서 나가동그라졌다.

명언이 왜 만들어지는 것인지

틀림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날들이었다.

따라서 이제는(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만)

새해 첫 날이라고 다르게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은 일찍 깼고

(늙어서 새벽에 자꾸 깨어 뒤척거리게 된다.)

아침은 간단하게 동지날 먹지 않은 팥죽과 동치미를 먹고

디저트는 단감과 사과 얇게 썰은 것

중간 간식으로는 바나나와 방울토마토, 우유 섞어서 슬러시처럼 갈은 것(무설탕이다.)

그리고 점심은 떡국 정식(한 살 더 먹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그리고 저녁은 남편에게는 버섯 모듬구이와 생선구이 정식을,

힘이 넘쳐나는 아들 녀석에게는 빨간 돼지고기볶음 정식을 준비했다.

남편 때문에 간이 약하고 달달하지 않으며 맵지 않은 음식 위주로 먹은 아들을 위한 특별식을 준비한 셈이다.

그리고 다시 힘든 약을 먹어야 하는 남편과,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운동인지 업무를 하러 가야하는

아들 녀석과는 저녁 식사 시간도 다르다.

따라서 나의 저녁 식사는 준비는 시간차로 2회이다. 새해 첫날인데 말이다.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 뭔가 달라야한다고

잘 닦아지지도 않는 후라이팬과 작은 냄비를 버리고 새것을 준비했고

다른 휴일과 똑같이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에

다시 내 옷정리에 들어가서 플리마켓 물품을 두어개 더 찾아냈고(나는 왜 이렇게 옷정리에 집착하는 것인가?)

남는 종이 가방과 옷걸이를 역시 플리마켓용으로 정리해두었다.

내일 가져가야겠다.

열심히 청소와 정리를 하다보니 키친타올이 똑 떨어져서 올해 첫 편의점을 방문했으나

거기도 키친타올이 없어서 대신할 곽티슈를 샀는데 운 좋게 1+1이었고(올해 운수가 나쁘지 않으려나)

점심을 먹고는 날씨가 그닥 춥지 않아

남편과 어린이대공원 올해 첫 산책을 했고(호랑이와 곰도 오랫만에 봤는데 사자는 자고 있었다.)

지난 주말 세번째 처치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는 티눈 때문에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저녁에는 딱히 예정된 일이 없다.

새해 첫날 과하지 않게 쉬면 되겠다.

콧물이 약간 나오고

목소리에도 콧소리가 약간 섞여있으니

이럴때는 푹 쉬는게 맞다.

새해 첫날이라고 꼭 달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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