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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23

나의 오마카세 브런치 카페 운영을 종료합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설날 아침이다.

출근은 하지 않지만 기상 시간은 똑같다.

몸이 기억하는 매카니즘은 AI 수준이다.

명절이나 주말에도 어김없이 작동하는 그 놀라운 힘.

이래서 무의식적인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마지막 출근날 아침.

나의 부재를 제일 아쉬워 하는 이유 중 한가지로

아침마다 무작위로 제공되었던 조식 오마카세임을 이야기하는 젊은 후배들이 있었다.

이제는 김선생님의 브런치 카페 영업 종료냐고 섭섭해했었다.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전절제를 오래전에 받았고

갑상선 호르몬약을 죽을때까지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 약은 약을 먹은지 1시간 후에 음식물을 섭취해야만 오롯이 흡수가 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나의 기상 후 첫 번째 미션은 당연히 약먹기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다보면 약을 먹었는지 아닌지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나는 곧장 약먹기를 수행한다.

그리고는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고 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 것이 오래된 나의 패턴이다.

따라서 출근 시간은 항상 학교에서 첫 번째이거나 늦어도 세 번째안에 들게 빠르다.

30분쯤 일찍 가서 하루를 준비하는 것.

그것도 나의 루틴이 된 셈이다.

무슨 일이든지 미리 준비하면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할 시간과 방법이 생기니 말이다.

그리고 약간의 먹거리를 챙겨가서 풀어놓으면 그것이 그날의 오마카세 브런치 카페가 되었다.


아들 녀석 도시락을 싸준지는 꽤 되었다.

그것이 아침인지 점심인지는 모호하지만 말이다.

나의 아침은

아들 도시락을 정성껏 싸고 남는 것이 되기도 하고

아들 녀석이 전날 받아온 빵이나 떡이기도 하고(직업 특성상 간식을 받아오는 일이 흔하다.)

학교 근처에 가서 그때 그때 끌리는 먹을 것을 사기도 하고(지하철역 내리면 냄새 가득한 고구마 구운 것에 홀린 듯 산 적도 있고 친절한 알바생이 있는 비건 빵집일때도 있고 물론 편의점일수도 지하철 역사안의 김밥집일때도 있다.)

나의 아침 오마카세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순전히 내 맘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먹을 정도 양이 아니라 가능하면 조금 넉넉하게 준비한다.

주변에 젊은 자취생 선생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야무지게 챙겨먹고 출근하기에는

8시반 출근시간은 너무 빠르고

교사 월급은 너무 작다.


2학년부 옆 한자리가 비는 책상위는 카페인 듯 식당인 듯 꾸며두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커피가는 기계와

커피 머신을 가져다두고

종이컵을 많이 가져다 놓으니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려먹는 자리가 된다.

어느 날은 과일을 깍아두기도 하고

빵이나 떡을 놓아두기도 하고(유명 빵집이나 떡집 것은 금방 완판된다.)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놓기도 계란을 삶아놓기도 한다.

가끔은 특식으로 유러피안 샐러드를 놓아두기도 하고

학기말에는 멋진 후배들이 케잌이나 과자를 보내주어서 나누어먹기도 했다.(사진은 나의 환갑기념으로 첫 제자들이 준 떡 케잌이다. 특이하고 맛있었다.)

수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한 과정이므로

과자나 사탕, 에너지바는 비상용으로 상비해두었다.

3교시쯤 지나고 나면 내가 가져다 놓은 그날의 먹거리가 다 사라져있고

이것을 보는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학교에서 먹는 것은 대부분 맛이 있다. 신기한 일이지만)

아마도 식당을 하는 분들이 싹 다 비운 그릇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아마도 내년 개학 후 얼마동안

후배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나의 부재가 아니라

그 먹거리들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침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준비해갈까를 고민하는 그 순간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것도 약간 슬프다.

괜찮다.

이제는 아픈 남편 음식에 총력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아들의 독립전까지는(결혼이 되기를 소망한다)

늘 그랬듯이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하면 된다.


나물과 버섯 불고기, 소고기무국과 가자미와 두부구이를 싸서 시어머님을 뵈러 8시에 출발하려 한다.

다행히 눈이 더 오지는 않은 듯 하고 길도 괜찮아보인다.


(이 글을 쓰고

9시에 약을 먹어야하는 남편 스케쥴과

조금은 따뜻해져야 도로 상황이 나을듯 하여

11시 출발 점심 먹는것으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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