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숲으로 가는 길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저녁 10시를 넘기지 않고 잠에 들고
신생아처럼 2~3시간에 한번씩 깨어서 뒤척이다가
다시 애써 잠을 청하다가 새벽 다섯시쯤 깨는 것이 요즈음 나의 일반적인 수면 패턴이다.
중간에 잠이 깨느냐 안깨느냐의 차이점만 있지(예전에는 물론 통잠이었다. 그때가 무지 그립다.)
수십년간 매우 비슷한 일상이었기도 하다.
누가봐도 아침형 인간이 분명하다.
이런 지극히 객관적인 아침형 인간인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낀 관점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얼마전 A형 독감에 걸렸을 때 아침 일찍 병원을 방문했을 때 느낀 점이다.
아니다. 그 이전에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서도 일단 느꼈었다.
매번 퇴근 후에 혈압약을 받으러 들렀던 그 때의 다소 한가한 느낌과는 다른 아침의 부산스러움이 있었다.
건강 검진을 같이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있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을지로 3가와 4가 사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병원인데 주변에는 작은 소상공인 어르신들의 직장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당뇨 위험군이라 매일 아침 공복혈당을 체크하고 있었다.
나보다 10여년은 더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혈당 검사가 그리 쉽지는 않을 듯 했고
아침에 그 병원에서는 주로 어르신들의 혈당검사와 그 결과 정리 및 투약등의 업무가 주였던 것이다.
그러니 매우 바쁠 수 밖에...
공복으로 버티고 혈당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고나서
아침을 먹고 업장의 문을 여는 것이 그 어르신들의 하루 시작이었다.
아침형 인간이 틀림없는 병원 원장님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일인데 어느 병원에서도 잘 해주려하지는 않는 일이다.(아마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10시쯤 느지막하게 문을 여는 병원이 훨씬 많다. 직장인에게는 병원 한번 가기가 쉽지 않다.
안국동 한복판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녔었다.
화곡동 그 먼곳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거의 매달려서 온다.) 그 당시 종로2가에 내리고 나면
멀미에다가 배고픔이 밀려오는 극한의 상태가 되곤했다.
지금의 안국역 코너 옛 풍문여고 맞은편 자리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을 지나고 나면 가게라고는 없는 오르막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빵집의 그 당시 마켓팅은 아마 지금도 통할 것이라 생각된다.(지금은 다른 업종의 가게이더라.)
일단 지나갈 때 맛난 빵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무리 돈이 없는 고등학생이라고 그냥 지나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아침 일찍부터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추어 식빵을 굽는다.
그리고 그 식빵의 한 덩어리씩을 자르지 않고(희망하면 잘라주는데 다들 그냥 담아온다.)
따끈따끈한 상태로 팔았다.
가격은 지금 생각나지 않지만 적정한 가격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니 너도 나도 줄서서 사게 된다.
옆에는 흰 우유, 딸기 우유, 초코 우유, 커피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 최애는 식빵 한덩어리를 손으로 떼어먹으면서 커피 우유를 조금씩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침이 든든하고 오전 공부에 힘이 났으며 내 생애 그렇게 따뜻하고 맛난 식빵은 그 이후로는 없었다.
사장님이 분명 아침형 인간이셨으니 가능한 마케팅 기법이다.
옛날에는 미용실 가게 구석에 방 한칸을 만들고 밥도 해먹으면서 가게도 운영하는 형태가 꽤 많았다.
그런 분들은 아침 일찍 미용실 문을 열었고 특별한 날 사전에 약속을 하면 더 일찍도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머리 모양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이 좌우되기도 하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공개수업일이나 학부모 총회같은 날)
당일날 아침에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가고 싶은거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과 이야기를 해서 당일 7시쯤 머리를 감고 단정하게 드라이를 찰랑찰랑하게 하고
산뜻하게 옷을 입고 출근을 하면 그 날 중요한 미션을 처리하는데 자신감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10시 이전에 문을 여는 아침형 미용실 원장님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가끔 늦게까지 하는 야간 미용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말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아침형 인간의 관점에서는
아침에 일찍 오픈하는 곳과
저녁에 늦게까지 하는 곳이 나누어져서
차별화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병원이거나 미용실이거나 빵집이거나
무슨 업종이든 아침에 빨리 문을 열어주면
나같이 당일에 무언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아침형 인간인 사장님만 시도가 가능한 아이디어이다.
이 세상에는 아침형 인간보다는
아침에 일찍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 조금은 더 많아보인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주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
내 마음의 숲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