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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서른 여섯번째

서울 아니고 파주

by 태생적 오지라퍼

강서 양천 지역에서 오래 근무했던 나는

시험 기간이나 교직원 연수 때 많이 가봤던 곳이

강화, 김포, 장흥, 파주가 대부분이었고(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긴 이후 대부도나 안산 등이었다.

전시장이나 식물원, 멋진 뷰 등의 볼거리가 있고

가격이 적당하며 단체 예약이 가능한 식당이 있는 곳이다.

교직원 연수를 운영해본 연구부장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본 하루였다.


직전학교에서 멋진 일들을 함께하고(전우라는 느낌이 든다. 군대는 안다녀왔지만...)

삶의 스타일이 비슷한 동료와 후배들이 있다.

4명이 함께 어딘가를 놀러간 몇 번의 기억이 있다.

맛난 것을 먹고(결코 많이 먹지는 않는다.)

고 퀄리티를 자랑하는 무언가를 보고(다음 번 행사 운영에 팁이 된다.)

목풍 수다를 떨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오랜만에 어제가 바로 그 날이었다.

오늘 행사의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

너무 먼 곳으로 가면 이동에 시간이 오래걸리고 누군가가 운전하는데 기운을 너무 빼게 되니

가급적 가깝지만 무언가 볼 것이 있는 곳으로 파주를 선택했다.

선택의 이유로는 파주에 사는 멤버가 한 명이 있다는 점과

서울역에서 새로운 GTX-A를 타는 것이 요새 유행이라는 점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도 넘쳐나는 우리 네 명이다.


주말 아침 서울역은 외국인도 많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여유있게 도착해서 서울역을 한번 돌아보고

오래된 태극당 과자점에서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사고 싶었으나

녹을까봐 오란다 과자를 사고(친정 아버지 최애 간식 중 하나였다. 오드득 오드득 씹을실때마다 이빨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지하로 한참을 내려가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순간은 항상 기분이 좋다.

모든 여행은 시작하는 순간이 최고의 기쁨인 법이다. 나는 그랬다.


GTX-A는(아직 서울역에서 삼성역과 수서역까지 연결을 되지 않았지만) 디자인과 성능은 최고였다.

역사도 멋졌다.

단지 흠을 잡으라면 화장실이 한참 올라와야 있다는 점과

에스컬레이터 높이가 어르신 대비 꽤 높다는 점이다. 올려다보니 아득하더라.

그리고 속도가 나타나는데 와우 173km/h 가 찍힌다. 실화냐...

꿈에서만 생각하던 고속 전철이 25분만에 우리를 파주운정역에 데려댜 주었다.


픽업을 나온 친구 차로

야무진 계획을 수행하였다.

먼저 크고 멋진 브런치 카페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맛도 분위기도 다 좋았는데 식물 카페를 표방했는데 생태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부분에 조화가 있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리고는 파주가 자랑하는 아울렛과

그릇 도매 상가를 구경했다.

아울렛에서는 최신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노력을(딱히 사고 싶은 것은 없더라. 아니다. 너무 비싸더라.)

그릇 도매 상가에서는 투명 유리컵 2개와

성능좋은 수세미 그리고 아들 녀석의 도시락통을 구매했다.

그리고는 파주가 자랑하는 음악감상실에 들렀다.

찾아보기로는 2곳이 있었는데 우리는 강뷰가 보이는 곳을 선택했고(뷰를 중시한다.)

처음 가보는 음악감상실 형태에 놀랐다.(나만 처음이었지만)

큰 규모와 멋진 건축 디자인에도 놀랐고(우리는 건축 디자인에 모두 관심이 많다.)

자차가 없으면 방문이 힘든 위치인데 많은 사람에도 놀랐고

멋진 사운드에 음악 샤워를 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피아노에 대한 애증도 살짝 올라옴을 느꼈다.

모든 종류의 음악에 어찌보면 피아노는 기본 역할을 해준다.

지금 피아노 앞에 앉는다면 손가락은 움직여줄 것인가?

언젠가 한번은 앉아보고 싶긴하다.

대학교때까지는 가끔 쳤던 기억이 있다만...

귀와 가슴이 호강했던 음악감상실 방문이었다.

(DJ 멘트가 너무 긴 것만 빼고는 완벽했다.)

다음에는 책 한 권을 들고 가서 오랫동안 머무를 의사가 있다. 잠을 자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으로는 파주가 자랑하는 산 초입에 있는 도토리 전문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도토리로 만든 다양한 음식과 김치 3종 세트의 특이한 맛이 묘하게 어울리는 근처 맛집이었다.

파주 사는 친구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기 힘들었다는데

우리는 약간 애매한 시간에 방문했더니 자리가 있었다.(역시 틈새 시장 공략법이 있다.)

너무 배가 불러서 식사 후 그 주위 둘레길을 걸어주었다.

오랜만에 큰 절과 불상을 구경하기도 하고

커다란 개가 무섭게 짖어대는 소리도 듣고

외딴 곳에 위치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등하교를 걱정하기도 하고(직업은 못 속인다.)

마지막으로 구경만한 천연 스파는 다음에 꼭 방문해보기로 하면서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당일 파주 여행을 마무리했다. 우리다운 여행이다.


파주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겨울같지 않았던 따뜻한 날씨와(전날까지는 눈과 비와 바람의 향연이었다.)

음악 감상실 강뷰 너머로 보이던 아스라한 북한의 모습들이었다.

저렇게 가까운데 전혀 다른 삶과 다른 문화와 상상할 수 없는 곳이라니...

그곳을 보면서

클래식을 들어도 가슴이 아팠고

재즈를 들어도 가슴이 아렸다.

오래전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일들이

현실로 바뀌는 요즈음이다.

그런데 통일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곧 고속전철이 그곳까지 한 시간안에 데려다 줄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오늘의 사진으로 빠른 속도가 찍힌

GTX-A 의 사진을 넣을 것인지

어슴프레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 사진을 넣을 것인지 고민이다.

사진을 이렇게 고민해보기는 또 처음이다.

어제 이렇게 돌아다녔더니 전날보다 수면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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