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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퇴직이 두려운 이유

예전처럼 잠꾸러기가 되고 싶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지금으로부터 2년전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글을 썼었다.

<퇴직이 두려운 여러 가지 것들 중 한 가지가 불면증이다.

퇴직이후 잠을 잘 잘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인거다.

교사는 감정노동자이자 동시에 육체노동자이다.

수업을 하는데 소요되는 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퇴직 후 불면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2년이 지난 어제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어제는 오전에 사부작 거리면서 일도 했는데

오후부터는 시간이 느리게 가더니

초저녁에 잠깐 잠이 오는 듯 하다가

다시 말똥말똥해지는

그리고 억지로 잠을 청해보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연탄 나르는 봉사활동이라도 나가야하나 잠시 생각했다.


연탄 봉사를 나가본 적이 있다.

벌써 10년 정도 되어가나보다.

생각보다 무거운 연탄에 놀라고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길의 경사에 놀랐던 날이었다.

이전 학교에 1년에 한번씩은 연탄 봉사를 하던 젊은 후배 교사가 있었고

(올해도 2월에 봉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허리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동아리 시간에 맞추어 몇몇 동아리가 함께

연탄 나르는 봉사활동에 참여했었다.

대부분 언덕길 위에 있는 구옥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달이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본 좁은 언덕길과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정겹기도 했었다.

(아마도 학생들은 처음보는 집의 형태인듯 놀랬고 연탄 봉사 티를 내기 위해 얼굴에 연탄을 조금씩 묻히기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나도 참 젊었었다.)

그런데 그 언덕길을 올라다니는 것은 쉽지 않겠다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특히 눈이 오면 말이다.


어릴 때 대부분의 집에서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살았다.

큰 딸이니 가끔씩은 엄마 대신 연탄을 갈기도 했는데(정말 싫었다.)

다 탄 연탄은 꼭 두 개가 찰싹 붙어있다.

그것을 한번에 짠하고 떼어내는 것이 실력이다.

완전 연소한 연탄은 버리고

약간 덜탄 연탄은 다시 한번

새 연탄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러

아궁이로 들어가야 한다.

새 연탄과 일부 탄 연탄의 구멍을 잘 맞추어서

최상의 연소가 될 수 있게 맞추어 주는 것이 초보에게는 결코 쉽지 않고

그러면 방이 추워지고

극단으로 연탄불이 꺼지게 되면

온 집안에 비상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잘못하면 옆 집으로 불쏘시개 연탄을 빌리러 나서야 했다.

그런 일은 꼭 장녀인 나를 시키셨다.(엄청 싫었다만 해야만 했다. 추운 것은 참지 못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연탄을 갈때 완전 연소가 일어난 연탄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지만

불완전 연소중인 연탄에서는 심하디 심한 연탄 가스 냄새가 나는데(일산화탄소이다.)

그것을 코로 들이마시지 않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해보지만

나의 능력 부족으로 여지없이 나는 가스 냄새에 질식 일보 직전이 되곤 했다.

어찌저찌해서 엄마 대신 연탄불을 갈고 나면

엄마는 미안하셨는지

설탕물처럼 달디 단 동치미 국물 한 국자를 떠주시곤 하셨다.

믿거나 말거나 동치미 국물이

불완전 연소한 일산화탄소를 없애준다는 것이

그 시대 국룰이었다.

그러고는 다 탄 연탄은 눈이 온 날이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눈밭에 잘게 부수어서 뿌려놓곤 하였다.

지금의 염화칼슘 대용이었던 것이다.

친정 엄마는 겨울용 연탄을 광 한가득 들어놓은 날이나

김장 김치를 가득 담아 묻어놓은 날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었다.

그런 날 나는 무한 노동의 댓가로 꿀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K-장녀의 아픔이고 겨울 일상이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한 가지는

잘 것이냐 먹을 것이냐 이다.

통잠으로 아이고 잘 잤구나 말이 절로 나오게 푹 잘 수 있는 것과

참으로 맛난 것을 잘 먹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먹거리를 만나는 것

둘 중에 한 가지를 주겠다고 한다면 선택이 힘들 것 같지만 나는 잠을 선택할 것 같다.

참으로 맛난 것은 내가 해먹을 수도 있고

많은 양을 먹지도 않으니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잠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너무 열일하여 힘들어도 오히려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개운하게 잠을 잔 적도 있으니 말이다.

어제 오랜만에 불면의 무서움을 다시 느꼈

(그 사이에는 아팠고 일이 많아서 잠은 잤었다.)

오늘은 그렇지 않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짐해본다.

아마도 일정이 바쁘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새로 운행을 시작한 GTXA를 타고

파주에 사는 친구 동네 구경을 나서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파주운정중앙역까지

놀랍게도 25분에 주파한다는

신문물 구경을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겠지만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설 예정이다.

어렸을 때의 나처럼

옆집에 불이나도 깨지않던

잠꾸러기가 되는것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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