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착하게 살자
보통 나의 이야기는 그날 그날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따로 글감을 준비한다거나 포맷을 설정한다거나 기승전결을 세밀하게 구체화하는
그런 전문가적인 멋진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주
무슨 알고리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일 조회수가 5,000을 넘고
글 하나 조회수는 10,000회를 넘는 기적이 일어났다.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나보다.
당황스럽지만 감사할 뿐이다.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시간이었다.
소고기 한 점 구웠고 점심 먹다가 남아서 포장해온
광장시장 빈대떡과 양파절임을 내놓았고
디저트는 딸기였다.
아들 녀석은 밥을 먹다가
TV를 보다가(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최강야구 마지막회를 돌려보았다. 나는 두 번째, 아들은 첫 번째 시청이다.)
카톡을 하다가(슬며시 웃는 것으로 보아 여친으로 추정된다.)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끔 하다가
이런 복잡하고도 힘든 과정으로 저녁을 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꺼낸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어제 우연한 장소에서 만난 사람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 이야기를 하더란다.
자기 딸이 그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었다고
학생들이 많이 좋아라해주었다고
교사 생활의 어려움을 잘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졸업 후 교사는 아니고 교과서와 참고서 제작회사에 취직해서 다닌다고...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아이고야 2년전 우리반 교생선생님이었다.
작년에는 교생 실습생이 없었다.
학교에서 힘들다고 일이 많다고
교생 실습을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멋진 후배가 양성될리 없다는 것은 왜 모를까나.
교과는 과학이 아니었으나 담임반은 우리반이었던 바로 그분이었다.(다들 안한다 하셔서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잘 대해 주었었나 힘들게 하지는 않았나
갑자기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다행히 학교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가지고 계신듯 했다.
세상이 이리 좁다니.. 착하게 살자.
2월 요즈음은 각 학교별로 기간제 구인의 어려움을 겪는 시기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더하다.
세부 전공이 맞아야하나 기간제 교사 희망자들은 대부분 중학교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수업을 하자면 교과 수업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지구과학 선생님을 구하는 학교들은 많고 희망자는 적다.
거의 실시간으로 결정이 되고
좋은 선생님을 구했나싶으면 더 좋은 조건의(가깝다거나 수업 시수가 적다거나 담임이 아니라거나 하는)
학교로 옮겨가는 일도 빈번하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각 학교의 교감선생님이다.
다행히 한 학교의 지구과학 선생님을 구해주었다.
학교의 구인과 딸의 구직을 이야기한 지인들이 있었는데 운좋게 딱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구해주고 보니 나를 포함하여 두 사람이 아는 사람이다.
같이 미국으로 지구과학연수를 갔던 다른 지역 교사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 두 사람은 교류가 끊어졌지만
나는 각각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해당학교 교감에게는 이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따님을 그 학교 기간제 선생님으로 보낸 지인에게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면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싶어서이다.
세상은 이렇게 좁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마지막 학교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과학실무사님과의 실험 준비과정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협업에는 신뢰와 무엇인가 말로하기 힘든 합이라는 것이 있다. (케미라고도 한다.)
그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참으로 힘든 일이 된다.
1년 반 전 갑자기 과학실무사님이 바뀌는 일이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일어났다.
그 전 한 학기는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하기 전 대학생이 임시로 맡아주고 있었다. 그분께도 감사하다.
이 모든 어려움을 끝내고 나의 마지막 학교 수업의 질을 높여줄 분이 발령받아왔는데
세상에 이전학교 테크센터 매니저로 역량갑인
내가 잘 아는 그 분이 오신거다.
어제 광장시장에서 점심을 같이 먹은 바로 그 분이다.
얼마전 나의 마음을 알고 학교 축제 오프닝 영상을 만들어주셨다는 공감 영재 바로 그 분이다.
공무직 시험에 자꾸 떨어져서 포기하려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본 시험이었단다.
비어있는 자리도 별로 없어서 이 학교에 오면 나도 있고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운명처럼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나의 마지막 수업과 업무를 한층 더 멋지게 만들어주셨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착하게 살았나보다.
육회낙지 탕탕이를 세 번은 사드려도 마땅하다.
이 일 말고도 알게 모르게 정말 많은 기적같은 일들이 모여서 오늘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것일게다.
감사하고 감사한 날이다.
앞으로도 쭈욱 착하게 살자.
그런데 착하게 산다는 것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옳지 못한 일에 입을 꼭 다물고 있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보가 되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늘도 감사하게 착하게 살자고 굳게 마음은 먹었으나 그렇게 될런지는 알 수 없다.
(어제 디저트 커피를 마셨던 멋진 디자인의 카페 사진을 올려본다.
레트로를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한 디자인이다.
저런 장소를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기적이다. 많고 많은 골목중에 그리로 들어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