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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서른 일곱번째

추억으로 남을 광장시장과 그 근처

by 태생적 오지라퍼

공식적인 마지막 일인 업무 인계인수,

녹색기후상 수상 브로셔 파일 작성 및 검토,

그리고 20일에 진행될 교사연수 PPT 수정 보완을 목적으로 학교 방문을 했다.

벌써 약간의 낯섬이 존재한다.

2월 28일까지 나의 소속은 이곳인데도 말이다.

운동장 한쪽 끝에는 아직 눈이 남아있고

햇빛 강한 쪽은 눈이 녹아있고

그 사이에 새순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다.

그 세 가지를 한 번에 찍은 것이 바로 오늘의 사진이다.


새로운 2학년 부장님은 업무 걱정이 가득한데

(누구나 새 학기 새로운 업무를 만나면 그렇게 된다.)

요약해서 업무를 안내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비법도 알려드렸으니

아마 잘 하시리라 믿는다.

녹색기후상 수상 브로셔 파일은 초안을 만들어갔고

학교 이미지와 교장 선생님 사진 등을 넣어 편집을 마쳤으니

주말에 최종 검토해서 담당자에게 보내면 된다.

20일 생태전환교육 ZOOM 교사 연수는

사례중심의 소개가 이루어지는데

녹색기후상 수상 소식 및 서울시교육청 2025 운영 계획을 추가 반영하였고

연수가 진행될 과학실 컴퓨터에 파일을 옮겨두었으니 당일 구동만 잘 되면 될 것이다.(기계는 믿을게 못된다만)

이제 시상식날 학생들에게 제공할 점심 식대 관련 기안 처리와

학교 카드 사용 후 영수증을 제출하는 일만 남았다.


오전 일을 마치고

나의 과학 수업을 위해 가장 애써주신 과학실무사님과 점심을 함께하려고 맛집을 검색했다.

이전 학교에서도 함께 있었고 많은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진행한 고마운 동료이다.

점심을 먹고 이후 나는 볼일이 하나 더 있어서

동선이 반대가 되지 않게 광장시장쪽을 가보자고 했다.

둘 다 길치이지만 학교에서 광장시장까지는 직진이고 내가 몇번 가본 적이 있었고

마침 오늘은 날도 그다지 춥지 않고 바람도 없었다. 산책하기 딱이다.


광장시장 맛집을 검색하면 육회비빔밥, 빈대떡, 마약 김밥과 떡볶이, 꽤배기, 호떡집등이 나온다.

그간의 감사함을 생각하면 육회비빔밥 한 가지로는 모자라다.

육회낙지 탕탕이를 좋아하냐 물었더니 엄청 좋아한단다. 다행이다.

굳이 바쁜 점심시간에 맛집에 가서

줄설 필요와 그럴 시간은 없어서

지나가다가 보이는 깨끗한 식당에 마침 빈 자리가 보여서 들어갔다.

육회낙지 탕탕이와 빈대떡, 육회비빔밥을 시켰다.

남으면 빈대떡은 포장해서 아들 녀석 저녁 메뉴로

주면 된다는 야무진 생각이고

사실 나의 주된 목적은 육회낙지 탕탕이다.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약간은 살아있는 낙지가 섞여있는 육회를 선호한다.

이 음식을 먹어야 광장시장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것 같았다. 만족스러웠다.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신 카페는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았는데

디자인과 구성과 커피 맛과 화장실까지 너무도 힙한 곳이었다.

오늘 간 식당과 카페는 재방문 의사도, 다른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의사도 있다.


나의 마지막 담임 반 학생들과 학급 단합 행사의 일환으로 광장시장을 방문한 날이 있었다.

보통 학급 단합 행사는 학교로 피자나 떡볶이를 배달시켜 나누어먹곤 하는데

나는 그후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및 정리 과정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난 음식은 식당에서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 학생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모두 다르다.

육회 비빔밥을 못먹는 학생도 있고, 매운 떡볶기를 힘들어 할 수도 있고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낸 묘안이 광장시장 나들이이다.

개인별로 10,000원짜리 온누리 상품권을 나누어주고

광장시장을 돌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거나 먹는 자유 시간을 주었다.

나는 이런 선택형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목적은 하나이나 본인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법 말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물론 모두 단톡에 공유했다.

어느 것이 가장 신기했는지,

어느 것을 구입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선택해서 누구와 먹었는지 이런 내용을 소소하게 올리고

가장 잘 올린 사람에게는 보너스 선물을 준다고 했다.

우리반 아그들은 착하게도 몇 명씩 조를 이루어서

함께 돌아다니면서

서로의 예산을 맞추어서 냉면과 빈대떡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육회비빔밥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마약김밥과 떡볶이 혹은 호떡과 꽈배기를 먹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1년간 사용할 사물함 자물쇠를

내돈 내산으로 구입하여 선물했었다.

학교 근처에 있지만

광장 시장은 처음 돌아봤고

외국 손님들도 많았고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진과 소감문이 올라와서 뿌듯했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친구가 없어 혼자 돌아다니는 녀석과

다른 녀석들 눈에 잘 안띄는 구석의 빵집에서

빵과 음료를 함께 먹으며 상담 아닌 상담인듯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장 투어는 언제나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보면서 힘을 얻게 되는 코스이다.

그 모습을 우리반 학생들도 아마 느꼈을 것이

나의 마지막 담임반 녀석들은 오랫동안 그날을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오늘 짧았지만 강렬했던 광장시장 산책을 마치고는

개인 일처리를 위하여 종로 4가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종로 3가역까지 걸어가는 겨울 산책을 즐겼다.

그 중간에는 종묘가 있었고

이 날씨에도 야외에서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었고

(옛날부터 종묘와 파고다 공원에는 그렇게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만)

그 길가에는 한집 건너 금은방이 있었고

종로 3가역은 1,3,5호선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지하철 역사 내에서의 이동 거리가 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대로 더 이상 춥지 않고 조금씩 살며시

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을지로 4가 근처에

공식적으로 가야 할 날 2번과

비공식적인 만남 1번 정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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