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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26

공부라는 것은 끝이 없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너무 학문적으로 뇌를 사용하지 않은것 같아서

오늘 아침은 모처럼 공부로 시작한다.

새로운 것을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부분 은퇴후 어학 공부(주로 생활 회화)를 시작하던데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시아버님은 영어 공부를 하셨고

남편은 일어와 영어 공부를 하던데 그것은 싫다.

영어와 일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다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그곳으로 여행을 가야하고

많은 대화가 필요할만큼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그것은 지금 나의 현실과 맞지 않다.

나는 공부를 하면 더 공부하고 싶은 이유와 목적이 뚜렷하게 있어야 전투력이 생기는 스타일이다.

공부하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고고한 연구자 스타일이 아닌 셈이다.

그러므로 내가 공부할 것은 정해져 있다.

늘 그랬듯이 과학교육 관련 내용이거나 아니면

나의 독특한 그림을 연습하는 일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우선 2권의 신진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어보려 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연구에도 그 시대를 반영한 트랜드가 있다.

서울대와 교원대의 두 논문을 읽어보면 그 트랜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박사 학위 논문이고 하나는 석사 학위 논문이고

둘 다 물리교육 전공이지만 관점은 조금 다르다.

하나는 그 어려운 양자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 수업에서의 그래프 관련 내용이다.

둘 다 수업 운영과 관련된 내용이기는 하지만(그게 맞다. 저자가 현장 교사 출신이라면 수업과 관련된 내용을 쓰는게 맞다.)

양자역학은 고등학교 대상이고 내가 안 가르쳐본 부분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래프 부분은 나도 관련 논문도 준비했었고

인터뷰 대상 교사로 연구에 등장하기도 하고

늘상 수업하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라 쉽게 읽혀질 것 같아서 이것부터 정독을 시작한다.(시작만 했다.)


또 한가지는 우연히 얻게 된 영재고와 과학고 선발 문항을 분석해보려 한다.

대외비가 분명한데 이것을 어떻게 얻으셔서

단톡에 올려주셨는지는 알 수 없다만

이번 기회에 너무도 수준 높은 영재고와 과학고 문항을 한번 꼼꼼하게 구경해보려 한다.

지나치듯 살펴본 바로는 고등학교 내용도 모두 포홤된 선행학습의 끝판왕이라는 느낌이 컸다.

서울대 입학생도 완벽하게 풀 수는 없을 것 같은 수준인데 중학생들이 답을 어찌 작성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내용으로는 논문도 작성할 수 없으니

그 현황은 내부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득이 될수도 독이 될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의 힘이런가? 놀라울 따름이다.


공교육의 교사였을때는 사교육을 가급적 신경쓰지 않으려 했었다.

사교육 종사자들을 낮춰본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학생 개개인의 학원 진도나 숙제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끔 학원 문제를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고

학원과 학교 진도가 안맞는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특별 프로그램인데 학원 시간과 겹쳐서 참석 못한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이제 공교육을 떠날 때가 되니 사교육 종사자들의 노력이 조금씩 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거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학교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할 때 그들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것

(더 할 수도 있다. 수업의 질이 수당과 직결된다.)

다만 차이점은 생활교육 부분에 대한 의무감이 다르다는 정도일 수 있겠다만.

(그 부분이 학교 교사들을 가장 힘들게 짓누르는 부분이 되었다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다.)

아, 스승의 날에 학교 선생님들은 꽃 한송이도 개인에게 받으면 안되지만

(학생회에서 모든 선생님께 주는 것은 가능하다.)

학원 선생님들은 꽃과 선물까지 가능하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부러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못주는 형편인데 깨끗하게 모두가 안주는 것이 맞다.

꽃과 선물이 아니어도 학생들이 나를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고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렇게 수업 시간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했던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인인가 보다.

노트북 화면으로 PDF 파일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번에 쉽게 와닿지가 않는다.

프린트를 해서 무언가 끄적여가면서 보는 스타일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미 수십년 된 방법이므로 쉽게 바뀌어지지가 않는다.

그렇다면 집에 프린터기를 들여다놓아야 할 것인가?

정녕 그것밖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요즈음 고민 중 한가지이다.

집에 프린터기를 들여놓으면 당분간은 고양이 설이의 관심 품목 1위를 차지할텐데 말이다.

프린터가 출력되는동안 그 주위에서 난리가 날 것이고

출력기 부분에 고양이 털이 끼인다면 곧 고장이 날 것도 같고

지구를 생각해서라도 종이 인쇄물을 가급적 줄여야 맞는 것인데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스마트하고 디지털 내이티브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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