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 대구에서의 점심은 아쉽게도 대구라는 지역색을 잘 나타내주는 메뉴는 아니었다.
건강과 영양과 맛에다가 공무원 여비 중 식비 규정 예산에 맞는 식당을 고르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곤드레나물밥과 슴슴한 된장국이 맛났고
가지 튀김과 생선껍질 튀김이 신기했고(생선이름은 까먹었다.)
양념이 잘 배인 깻잎이 맛났는데 많은 양을 먹을 수는 없었다.
아침으로 먹은 유뷰초밥 네 알이 아직 채 소화된 것 같지 않았고
많은 양을 먹으면 밀려오는 졸음을 쫓기가 힘든 나의 상태를 고려했고
친한 사람들이 아닌 업무 관계자와의 회식이라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아쉬울 정도에 수저를 내려놓는 것이 소식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것이 맛나게 먹었다고 오래토록 기억할 수 있는 묘안이다.
그러고보니 대구 도시의 특색을 잘 나타내는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나.
학회 참석 빼고는 대구에 와본 일이 몇 번 되지 않는다.
미국 시애틀 연수를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겨울방학에 대구에 와서
대구 뽈찜을 먹었었는데(맛나게 자극적이었던 기억은 난다. 처음먹어봤다. 그 이후로도 별로 못 먹어봤다.)
메뉴에서의 그 대구가 도시 이름 대구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긴 하다.
그리고는 아마도 대구 일대의 지질답사를 했는데 지금처럼 몹시 추웠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젊었었으니 참을만 했을거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는 <유퀴즈>에 나온 영양사님편을 우연히 보았다.
학교와 다를 바 없는 식사 예산이었는데 그런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비법은 다른 것이 없다.
많이 찾아보고 전화해서 상담하고 어려운 사정을 호소도 해보고 다른 곳에도 많이 알려준다고 하고...
내가 일하는 방법과 똑같다.
나도 많이 찾아보고 문의 전화를 사방에 돌려보고 사장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려보고 그리고 잘해준 업체는
다른 선생님들께 널리 널리 소문을 내주었다.
어느 분야이건 일 잘하는 비법은 똑같다.
화면으로 보기에 메뉴는 훌륭했다.
맛까지 내 취향인지는 안 먹어봤으니 모른다만
단, 내가 먹기에는 음식 양이 너무 많았다.
단체 급식에도 또는 식당에도 매뉴의 양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면 참 좋겠다.
나같은 소식좌도 분명 있을테니 말이다.
많이 못먹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마음 쓰이는 일이다.
오늘 아침으로 어제 받은 대구 능금빵(상큼하게 맛났다.)과 우유 한잔, 사과와 딸기를 먹고 나니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찾아보니 집 주변 대형 마트도 오늘 휴일이다.
조금 멀리 걸어서 시장 나들이를 해볼까 했는데 아직은 날이 춥고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 녀석은 점심 약속이 있는 것 같고 남편은 시어머님댁에 있고
나 먹을 것만 해결하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냉장고를 뒤져본다.
감자, 당근, 양파 넣고 카레 끓이고
조금 남아있던 떡국떡과 소고기 넣어 간장떡볶기 스타일로 만들고
가지 한 개 반 길게 썰고 양파와 파도 길쭉하게 썰어서 된장 지짐 스타일로 만들고
(친정 어머니 최애 반찬이셨다. 여름철 밥맛 없을 때 이것에 쓱쓱 밥 비벼서 드셨었다. 그때 나는 그 맛을 받아들일수 없었지만 이제 이렇게 먹곤 한다.)
자잘한 멸치 꺼내서 고추장 멸치 볶음을 완성했다.
저녁용으로는 갈치 구우려고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두고 음식 준비를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새 음식을 했지만
정작 나의 점심 선택은 어제 먹고 조금 남은 닭볶음탕 국물이다.
새로 만든 음식 모든 것을 제압하고도 남은 닭볶음탕.
이번 것은 국물이 끝내주게 되었다.
내가 한다고 매번 음식맛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디저트는 어제 서울역 태극당에서 사온
우유 모나카 아이스크림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것은 태극당 팥 모나카였다.
제주 여행 유튜브를 너무 많이 돌려봤나보다.
회가 먹고 싶기는 하다.
기다려라.
제주 갈 때까지 내 뱃속 컨디션을 최고로 만들고
싱싱한 너를 만나보도록 하겠다.
다음 주도 화려한 먹거리가 대기 중이다.
월요일 같은 학번, 같은 학교 근무 교사 저녁 모임인데 특이하게 참게메기매운탕을 먹는다.
너무 학번이 들통나는 메뉴인가 싶지만...
수요일 점심은 나의 마지막 학생 인솔 출장인
2015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시상식에 참가하고
그 이쁜 학생들과 마지막으로 미나리 삼겹살을 먹자고 약속했다.
좋아라했다. 역시 10대들에게는 삼겹살이 최고이다.
점심이면 어떻냐? 옷에 냄새가 좀 베이면 어떻냐? 맛있으면 된다.
어제 갑자기 생긴 목요일 점심 약속은 이촌동 통영음식점이다.
양이 많지 않은 고급 음식점이라고 추천받은 곳이다.
한번 가봤는데 재방문 의사 있었던 곳이다.
점심 먹고서는 박물관이나 공원 한 바퀴를 돌면 되겠다.
그리고 3월 3일 정말 마지막으로
물리과 멋진 후배님과 지질답사계의 거성 후배님과
추억의 정동길에 새로 생긴 핫플 식당에서 곰칼국수를 먹으면
퇴직 기념을 주제로 한 대단원의 모든 모임이 끝나게 된다.
퇴직의 우울과 슬픔과 낭만을 느낄 틈도 없이 빽빽한 스케쥴이었다.
먹는 것이 이렇게 쉽고도 어렵고도 정을 나누는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곧 혼밥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간이 올 것이다.
(케일을 별로 좋아라하지는 않았으나
어제 나비에게 잎의 뒷면을 내어주는 장렬함을 보고
내일 쌈채소를 살때 케일을 같이 주문하려 한다.
사진은 어제 본 케일꽃이다.
쌈채소들의 꽃은 색도 모양도 비슷비슷하다.
친척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