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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29

과학관은 살아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정말 오랜만에 과천과학관에 갔다.

2년 반 전에 학생 인솔로 가고 처음이다.

그때는 동국대와 함께 하는 기후변화 활동이어서

자연사전시관쪽에 한정되어서 관람을 하고 퀴즈를 풀고 했었는데

오늘 갔더니 자연사전시관은 완전 리모델링을

다른 전시관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학관이란 이렇게 한번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시기적절한 전시물로 바꾸어주고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일이 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과천과학관의 노력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요일 이 시간에 과천과학관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은 사람이 가득한데

대부분 담배 냄새가 엄청 나는 아저씨들이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바로 앞 지하철역이 경마장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경마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다.

주말이고 마침 그분들이 모두 출동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내가 오늘 만나려고 하는 박사님은 입장권을 끊지 말고 자신에게 연락하라 하였으나

나는 오랜만에 관람객이 되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약속 시간 삼십분 일찍 도착해서 메인 전시관을 빠르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미국으로 영재연수를 갔던 그 오래전에

시차를 고려한것이기도 했다만

방문 첫날 일정은 오롯이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과

항공우주박물관을 자유 관람하는 것이었다.

크기에서도 압도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자연스러운 가족들의 과학관을 즐기는 태도였다.

지금은 우리도 비슷한 형태의 관람 태도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경직된 그저 말그대로의 관람에 그치는 시기였으므로 더욱 놀라웠다.

세계 4대 다이아몬드보다도 다양한 공룡 화석보다도

더 멋졌던 것은

아이를 어깨에 목마태우고 열심히 전시물에 대해 설명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영재 판별 분야 논문을 준비하던 그 때의 나는

과학관에 학생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진짜 영재인지 아닌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저절로 알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오늘 아침.

10시 인데도 꽤 많은 가족들이 과학관에 벌써 입장해있었다. 놀라운 과학 열풍이다. 놀랍다.

단,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이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서 안타까운 점이기는 하다.

오늘이 연휴이고, 긴긴 방학에 다들 지쳐있고,

과학관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멋진 새 학년 출발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멋진 부모님들이다.

아이들은 모두 공룡을 좋아라 할 것 같지만

모니터에 나타나는 가상 공룡 쪽으로 얼굴을 밀어주자 무서움에 우는 아이도 있

물고기들이 많이 있는 해양생물 전시 어항에서 니모는 어디있냐고 애타게 물어보는 아이도 있다.

아버지의 답변이 더욱 걸작이다.

<니모는 오늘 일찍 퇴근했대.>

전문 도슨트의 투어도 좋지만

이렇게 부모님들과 함께 알아가는 과학 내용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진정한 의미의 과학관 존재 이유일 것이다.

과학의 대중화이던지, 시민 과학교육이던지, 대중화의 과학이 되었던지 그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주말 과학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 시절 어학연수로 미국에 있을 때 만나러 갔을때(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시기이다.)

샌디에이고에서 해변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하다가

<엄마는 과학관을 가야지?> 하면서 당연하게 그곳의 자연사박물관을 함께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본 감동적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부부가

[대륙이동설과 판 구조론]에 대한 꽤 전문적인

그림과 설명이 걸려있는 포스터에서

한참을 서로 그 내용에 대한 토론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어가는 장면이다.

공룡이나 화석, 광물이 아니라 지구 내부 구조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니...

지금도 그 백발의 노부부의 모습이 생생하다.

난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남편은 100% 완전 문과이다.

과학에는 조그마한 관심도,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하물며 [대륙이동설과 판 구조론]이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항암 과정만 잘 버텨내주면 된다.

과학 좀 몰라도 된다.

내가 두 배 알고 있지 않은가?

부부 합산 평균값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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