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도 쉬지는 않았다만.
출근을 하지도 않는데
아침 차려줄 식구도 없는데
왜 이리 일찍 잠이 깨는 것이냐.
늦잠이라도 자면 하루가 조금은 짧을텐데 그 복도 없다.
이왕 일찍 일어났으니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해본다.
먼저 메일함을 열어 스팸 메일과 광고성 메일을 모두 수신 거부 처리했다.
아침마다 오는 좋은 말씀 메일이나
이제는 필요 없게 된 연수 관련 메일등을 모두
수신 거부 처리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몇 개의 학회 관련 메일 정도이다. 메일함이 날씬해졌다.
퇴직 선배 친구의 안내로 걷는 걸음수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는 어플 두 개를 설치했다.
운동도 되고 포인트로 간식도 사먹을 수 있다니
재미와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한참 전에 깔았어야 마땅하다.
하루에 이만보는 훌쩍 넘기게 걸어다녔을때 말이다.
이렇게 나는 경제적인 관념이 뒤져있다.
그러니 부자되기는 애저녁에 틀렸다.
오늘 하루는 10957보 걸음으로 측정되었다.
매일 만보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
청소기를 돌리고
아들 녀석의 이불 빨래를 건조시키면서
다음 주 영재 특강 관련 간단한 문서 작업을 해둔다.
아직 멀었지만 미리해둔다.
언제 어떻게 컨디션이 나빠질지 모르는 나이이다.
문서작업도 매일 하다가 안하니까 점점 속도도 느려지고 손가락은 둔탁해지는 느낌이 든다.
매일 해야할 것들에 산책, 글쓰기, 그림 그리기에 사소한 문서 만들기를 추가해두었다.
가끔씩 오는 전화는 거의가
카드 배달로 위장된 보이스피싱이거나
광고 혹은 각종 사기성 안내 전화인 듯 하다.
내 개인정보는 어디에 이렇게 많이 털린 것이냐?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으나 절대 받지 않는다.
가끔 오는 톡은 대부분 잘있냐는 안부 묻기와 습관적인 일상 톡이거나
기간제 교사 구인이거나 기타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몹시 반갑다.
정성껏 답변을 보내준다.
그렇게라도 내가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니 기쁘다.
오늘은 정년퇴직때 수여받은 훈장을 찾으러
학교에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학교 일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모든 수업이 끝난 오후 네시에 방문을 예정하였다.
그 이전에 근처 전시회도 하나 보고
이른 저녁 먹을 곳도 찾아보려 하였으나
그 전시회는 4월 25일 오픈이고(선예약이라 할인 받았던 것을 깜빡했다.)
그 시간에 맛집들은 대부분 브레이크 타임중이었다.
오랜만에 은행에 들러서 통장 정리를 하고 둘러보니 은행에도 온통 어르신들뿐이다.
그리고 가장 충격인것은 매일 다녔던 출퇴근길이 이리 낯설수가 있나 싶은 것이다.
저녁에는 에코스쿨 건립을 위한 ZOOM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내내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다.
내가 할 말을 누군가가 한발 먼저 한다.
그리고 줌 카메라로 보이는 내 얼굴이 너무 늙어보인다.
그냥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그리고 단 한 번의 의견 제시로 한 시간 반의 회의를 마감한다.
원치않았지만 피할 수는 없었던
바보가 되는 고속도로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1일 1실수를 한다.
사소한 실수라는 것이 결코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안된다.
(나는 원래 빠른 속도를 무서워한다.)
빠져나올 수 없다면 역주행 할 수 없다면
최대한 저속 주행을 해야만 한다.
그래도 오늘 하교길에 마주친 학생들이 나에게 남겨준 눈빛과 이야기(보고 싶었다고 해주어서 고맙다.)
아직은 꽃 필 준비가 덜 된 식물들과 나무 사이로 보이던 흐린 남산 타워 뷰(매일 보던 것들이다.)
그리고 맛난 해물찜을 사주셨던 고마운 분들을 위안삼아 나름 바빴던 하루를 마감한다.
( 표지 사진은 어젯밤 여섯시 사십분 경 귀가길 아파트 입구에서 찍은것이다. 그림같다. 달을 보면서 위로 받는 날들이 점점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