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만 잘 버티면 된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3월은 순삭의 시간들이다.
아무리 2월까지 푹 쉬고 미리 준비를 했어도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매년 하던 일도 낯설기만 하고 학교는 춥기만 하고
(그래도 올해는 이번 주까지는 따뜻했다. 그나마 다행인데 다음 주 다시 서늘해진다고 한다. 그럴줄 알았다. 봄이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교사나 교직원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학생들도 학부모님도 다 마찬가지이다.
일단 선생님이 바뀌고
그 선생님들마다 수업 스타일이 다 다르고
허용 범위도 다르며 준비해야 할 것들도 다 다르다.
특히 새로운 학교급에 진학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중학교에서는 가능했던 것들이
고등학교에서는 안되는 것도 많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업로드되기가 무섭게 분명 수업 시간 중인데 좋아요를 누르는 졸업생들이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혼을 내줄까하다가 말았다. 이젠 내 몫이 아닐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 녀석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 것도 같다.
희망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애써서 면접을 보고 있는 것 같고
첫번째 시험인 성적에는 들어가지 않는 기초학력진단검사를 그냥저냥 본 것 같고
등교 시간이 엄청 빨라진 것 같고(해뜰때 나간다)
학급 임원 선거를 마친 것 같고
야구부들은 올해 첫 시합 준비로 바쁜 것 같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너희들의 멋진 앞날을 기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절대 스토커는 아니다만
어려움이 있다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도 된다.
미안해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이제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된 나는
혼자 새로이 서는 방법을 연습 중이다.
아직은 서툴고 마음만 바쁘고 머릿속만 복잡한 신입생인 셈이다.
1일 1산책으로 10,000보를 걷겠다했으나
이틀 걸어보니 6,000보 정도가 무리가 없는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허리가 아프더라.
역시 해보는 것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학교도 건조한데 집도 못지않게 건조해서
입술이 뻑뻑해지는 것을 느끼고
립밤을 사러갔는데 하나를 잘못 받아와서
내일 다시 가야하게 생겼다.
확인 안하고 덥석 받아온 내 잘못도 있다.
가급적 균형 있고 우아한 혼밥을 하려고
오로지 나를 위한 식기와 수저를 새로 샀다만
저녁은 아침에 먹다 남은 루꼴라 가득 샌드위치로 떼웠다.
이러려고 산 것이 아닌데 말이다.
걸음수를 체크해주는 어플은 매일 혈압과 맥박수도 기록하라고 한다.
칸이 있는데 비워두는 것을 못하는 나는
친정아버지가 쓰시던 오래된 혈압과 맥박 측정기를 오랜만에 꺼내서
아침마다 한번씩 측정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기구를 왜 내가 가지고 있게 된 것인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매일 매일의 기록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본태성 고혈압을 가진 나는 오래전부터 혈압약을 먹고 있다.
어제 저녁에는 단톡을 정리했고
오늘 저녁에는 용량이 꽉찬 드라이브를 정리하고
이번 주말까지는 컴퓨터 파일 정리를 하려한다.
물론 카톡 친구도 많이 숨겨두었다.
인간관계와 디지털 세계의
미니멀라이즈를 시도하는 중이다.
(이것이 단절과 고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여전히 일찍 눈을 떠서는 뜬금없이
8년전 이전 학교 체육관 뒤편 빈 공터에 학생들과 함께 묻어두었던 캡슐 생각이 났다.
천문학 부분 수업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조그마한 캡슐에 넣고 우리끼리만 아는 장소에 묻어두자고 했다.
누구의 발상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땅을 팔 수 있는 모종삽을 제공해주었던 것 같다.
날이 추워서 땅을 파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손도 시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 위치는 무언가 공사를 위해서 땅을 뒤집는 일 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위치였지만
그리고 그때 함께 묻은 녀석들은
이제 대학교 졸업반이거나 혹은 취업을 해서
까마득하게 그 일을 잊어버렸을텐데
오늘 나는 문득 그날 그 시간이 떠올랐다.
혼자 새로운 출발을 한 이 시점에 말이다.
아무리 새로운 출발이라해도
나의 이전 시점과 역사를 모두 다 지울수는 없다.
부정할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언제나 그들과 그리고 학교와 마음만은 함께 하겠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그리고 매일 매일은 새로운 날들이다.
하루도 어제와 같은 날은 없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다시 신입생이 된 나도
이 3월만 잘 버티면 어찌어찌 또 적응될 것이다.
생각보다 3월은 길기는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