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혼밥 메뉴 복기
남편이 은퇴하면 삼식이가 되어서 제일 힘들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국룰이 되었다.
나는 남편 식사를 차려주는게 힘드는 것 보다
(그래도 그것은 둘이 밥을 먹게 되니 효율성도 있고
밥 먹을 기분도 난다만)
혼밥으로 먹는 것이 더 힘들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만 나는 그렇다.
꼭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도 삼식이가 되니 힘들다.
아무리 조금씩 자주 있는 것을 먹는 스타일이지만
한끼를 준비해야하니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두 끼만 먹는것은 재미가 반감하더라.
이번 주 하루 종일 혼밥한 날은 화, 목, 금요일이다.
월요일까지는 남편과 아들이 있었고
수요일은 이른 저녁을 옛 동료들과 먹었고
오늘 토요일 저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학교 제자들(이제 모두 40이 훌쩍 넘었다)과의 식사가 예정되어 있고
일요일 점심은 시댁 식구 모임이니 힘든 삼식이 하루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만 버티면 된다.
화요일이면 아들이 귀국하게 되니 삼시세끼 혼밥을 면할 수 있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중에 먼 곳에서 출장 투혼중인 아들이 걱정이 되고 기다려진다.
일단 혼밥을 하는 기간에는 장보기 횟수가 반으로 준다.
무언가 식재료를 살 의지가 줄어든다는 것이
대충 먹겠다는 나의 무의식의 표현이다.
다음은 이번 주 혼밥의 단촐한 메뉴이다.
월요일 저녁 : 남편이 잘 먹었던 미역국과 마지막 남은 배추김치
화요일 아침 : 엄마가 끝까지 드셨던 과일인 사과 반쪽
화요일 점심 : 냉동 신김치 녹여 끓인 김치국밥(위에 뿌린 김가루가 치트키)
화요일 저녁 : 전복톳 솥밥 밀키트 데워서 달래장과 김구이
수요일 아침 : 우유에 콘푸로스트
수요일 점심 : 아들이 잘 먹었던 감자고추장찌개와 부추김치
수요일 저녁 : 옛 동료들과 달달 매콤 해물찜
목요일 아침 : 우유에 콘푸로스트
목요일 점심 : 낫또 올리고 달래장과 김구이
목요일 저녁 : 냉동 신김치 녹여 달달볶은 볶음김치덮밥과 닭가슴살 구이
금요일 아침 : 동네 빵집의 루꼴라 샌드위치 반쪽, 커피
금요일 점심 : 감자+참치+양파+두부 짜글이와 봄동 잘게 썰어 비빔밥, 동치미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짠맛이 강해서 물을 넣었더니 짜글이도 찌개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처참한 실패. 실패를 되새기려 사진을 굳이 넣어보았다. )
금요일 저녁 : 동네 빵집의 루꼴라 샌드위치 남은 반쪽, 방울토마토 5알
토요일 아침 : 두부 북엇국에 파김치와 열무김치
토요일 점심 : 립밤 교환차 갈 백화점에서 무언가 필히 외식 예정
토요일 저녁 : 제자들과 소고기 먹을 예정
식사의 부족한 열량(식사량이 작으니까)은 디저트로 메꾸었다.
태극당 모나카 아이스크림, 모나카 과자, 도라야키, 감태로 둘러싸인 오란다까지
우리 아버지 최애 간식들로 열량을 팍팍 채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는 맛없는 것 빼고는 다 좋아라 하셨던 것 같다.
내가 85% 닮았다.
단지 흡입하는 양에서의 차이와 해산물쪽 취향을
못 쫓아갈 뿐.
내일 점심 시댁 모임은 시아버님 기일과
시어머님 생신을 함께 기리는 모임이다.
나는 남편에게 줄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서
어제 산 반찬용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갈 예정이다.
무엇을 할지는 오늘 립밤 교환차 가는 백화점 지하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예정이다.
퇴직하고 가장 그리운 것이 학교 급식이라고들 하셨다. 퇴직 선배님들께서...
그 말이 맞다.
맛없는 날, 성의 없는 음식인 날, 급식에 대한 서운함을 글로 써댔는데
아무 걱정 없이 주는 대로 먹던 그 한 끼는
행복한 일상 중 한 가지가 확실하다.
다시 음식을 다루는 유튜브를 틀어두었다.
그때 그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 주제가 결정되는 이런 현상이 묘하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반영하는 듯 하다.
그리 좋아했던 <최강야구> 돌려보기를 안하는 중이다.
거대 갑질 중인 방송사에 대한 나만의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그런 형태가 갑질이다.
갑질이 없는(적어도 줄어드는) 세상을 기대한다.
(남편을 위한 반찬으로는 감자조림, 대파나물, 멸치볶음을 할 예정이고
나를 위한 먹거리으로는 반미샌드위치와 모듬김밥을 사왔다. 물론 두번에 나누어서 먹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