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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은 꼭 필요한 것일까?

정답이 없는 문제가 더 많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드디어 늦게 일어났다.

오늘 드디어 내가 희망하던 시간인 7시 근처쯤에 일어났다.

이제 하루가 좀 짧게 느껴지려나.

퇴직 후 나는 알람을 7시 45분에 맞춰 두었다.

아마도 그 시간에는 늦어도 일어나야 정상이라고 시작한 나의 무의식의 표현이었나보다.

오늘 7시대까지 잔 것은

토요일 저녁 모임, 일요일 아침과 점심 모임까지 달렸더니 힘이 떨어졌던 것일 수도 있고

지난주에 10,000보 걷기를 4회 정도 해서 일 수도 있고

새벽 두 시쯤 한번 깨고 화장실에 다녀왔으나

휴대폰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다시 서늘해진 날씨 때문일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지 원인이 단순하고 명확하게 단 한 가지인 경우는 드물다.

인생은 복잡계이다.


토요일 제자들과의 모임에서 주된 이야기 주제 중

한 가지는 자녀 훈육이었다.

뗑깡을 심하고 피우고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따끔하게 체벌해서 혼내야 하느냐,

아니면 무한 사랑으로 감싸야 하느냐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양날의 검이었다.

부모들에게도 그렇고 교사들에게도 그렇다.

사랑의 매라는 용어는 이제 통하지 않고

요즈음은 무한 사랑이 대세인 듯하다만

나는 하나뿐인 아들을 많이 때렸다.

(주로 꼬집었는데 미안하다.)

그 날 모인 제자들은 집에서 많이 맞고 자란 부류와 별로 맞지 않은 부류로 나뉘었는데

자기 자식이나 학교에서의 체벌은 또다른 문제가 되는 듯 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왜 안 때리셨던거냐고?


사실 나도 체벌이 허용되는 시기에 몇 대쯤은 때리기도 했었다.

나무 자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혹은 엉덩이를 때린 적은 있었다.

가급적 따귀를 때리는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대표로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체벌은 절대 하지 말자는 것도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한 달안에 나는 두 번의 따귀를 반장이라는 이유로 맞았었다.

한번은 음악 선생님께, 한번은 체육 선생님께이다.

첫 번째로 방문한 음악실 수업에서 번호대로 자리를 찾아서 앉아 있지 못했다고

(분명 알려주신 적이 없다. 음악실에 좌석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엄청 억울했다.)

반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로 운동장 수업을 한 체육 시간에

4열 종대로 제대로 줄을 서서 운동장 크게 도는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막 반장이 되었고 아이들과 친해지지도 못했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었는데)

두 번 다 휘청거릴 정도로 세게 맞았고 음악 선생님의 긴 손톱에 얼굴 흉터까지 났었다.

그 때의 충격으로 나는 두 분을 절대 좋아하지 않았고

가급적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으려고 도망다녔고

(그래도 체육 선생님은 자꾸 불러서 성적 처리 등의 개인 일을 시키곤 했다. 그땐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에서 음악과 체육을 지워버렸고(실상은 좋아하는 과목이었음에도)

내가 교사가 되어서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

분위기상 체벌을 하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정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만을 회개 기도할 뿐이다.

아마 나에게 따귀를 내려주신 그 두분 선생님들도

퇴직 즈음에는 나처럼 회개하고 반성하셨으리라 믿는다.

때리는 것을 좋아라하는 그런 이상한 성향의 사람들은 아니셨을 것이라고.


그런데 간혹 그렇게 이상한 분들도 있긴 하다.

교사 집단도 너무나 대다수이고 그런 성향까지 골라낼 비법은 쉽지 않다.

그날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 속에서도 몇 명이 등장한다.

이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들이 모여있다.

나와 같지 않다고 이상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정상 범주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그 범위를 벗어났을 때 부모로서나 교사로서 제재할 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체벌만이 그 답은 아닐텐데 말이다.

수많은 문제 행동과 부딪혔을 때 대처 방안은 안타깝게도 정답이 없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두 써보는 것만이

그리고 진심과 정성으로 대하는 것만이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교실에서 애쓰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 파이팅이다.

<우리 애는 부모말은 안들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어떻게 말 잘듣게 해주세요. 그런데 때리거나 혼내는 것은 안되요. >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는 학부모님들이 줄어들기를 기도한다.

벌써 잘 버텨서 3월 3주차가 시작되고 있고

오늘은 교사들의 월급날이다.

금융치료가 될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맛난 거 먹으면서

겁고 평안한 저녁을 보내시기를 기원한다.

40여년간 나의 월급날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고양이 설이가 꽃 주위를 자꾸 돌아다니면서 건드려서 꽃이 말라가는 거 같다. 고양이 엉덩이를 세게 한대 때려줘야할까, 아니면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하고 츄르 하나를 줘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꽃이 좋다는 설이를 어쩔 것이냐. 그림에 설이가 너무 뚱뚱하게 나왔다. 내 그림 실력 미숙때문이다. 설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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