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를 능가하는 두번째는 많지 않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인 <김성근의 겨울방학>을 보면서 혼밥 점심을 먹는다.
유튜브를 보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 프로그램 때문에 티빙을 결제하고 월요일 12시를 기다린다.
야구를 떠난 듯 떠나지 않은 잔잔한 멜로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번 강릉편에서 나의 추억의 장소인 오대산을 찾아갔다.
오대산은 내 생애 첫 번째 여행 장소이다.
물론 수학여행 등의 공식적인 나들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오늘 프로그램이 나의 대학 1학년 여름방학으로의 시간 여행을 가져다 주었다.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서 나는 고등학교 절친의 소개로 멋진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
나의 자랑이고 자존심이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대학에서 맞는 첫 번째 여름방학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면 곧장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대학 새내기에게
긴 여름방학이란 선물과도 다름없다.(물론 재수생들에게는 고난의 시기이다만)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우리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핸드폰이나 톡이나 화상회의가 없었던 1981년 여름이었다.
연대앞 독수리다방 2층에 모여서 그 사이에 가고 싶은 곳을 찾아온 결과를 서로 이야기하고
다양한 요소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결정한 장소가 오대산과 그 일대 소금강이었다.
사실 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어디든 간다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멀미가 심한 나는 이미 시외버스에서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고
날은 연일 30도가 넘게 엄청 엄청 더웠고
텐트와 개인짐들의 무게는 상상초월로 무거웠고(처음 가는 여행이니 짐싸기도 처음이었다. 다들)
생전 처음 텐트를 치는데 시간과 노력은 엄청 걸렸고
처음해보는 불 피우고 찌개 끓이는 그 과정이 서툴렀지만 재미있었고
설은 밥이었지만 배가 고파서 김치찌개와 뚝딱 밥 한그릇씩을 비웠고
낭만 100프로 청춘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 바로 그때였다.
둘째날 오대산 등반은 내 일생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였다.
전날 밤 텐트에서 돌에 등이 배기고 바람 소리에 귀가 열려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로 오대산을 등반하는데
다리는 풀리고 날은 더워서 땀은 범벅이고
오대산은 초보에게는 엄청 난이도가 있는 산이라는 것을
그 때 우리는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에게는 만병통치 젊음이 있었다.
마침내 정상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서 숙소 앞에서 찬 물을 머리에 한바가지 부었을때의
그 차갑고도 청명한 느낌이 아직도 생각난다.
수돗물이 아니라 펌프질해서 올린 지하수였다.
내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찬물로 머리를 감은 날이다.
오대산 부근 어느 계곡에서의 물놀이와 수다
그리고 밥해먹기와 설거지 내기를 빙자한 각종 게임은 지금 방송으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빼다박았다.
손목과 이마에는 벌로 맞은 손가락 흔적이 선명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빨갛게 탄 살갗을 가지고(선크림이 없었을 때다.)
놀러 갔다 온 티를 팍팍 내면서
그 해 여름방학을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처럼 자랑하면서 다녔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장흥으로 놀러갔었고(눈이 쌓여서 낭만적이었다.)
두 번째 여름방학에는 그 멤버들과 그대로 덕유산을 갔었는데
역시 재미는 있었지만 사실 오대산처럼 강렬한 기억이 남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함께 한 장소들은 많이 있었으나 오대산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다들 그런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가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그 뒤로 다른 멤버들과 오대산은 한번인가 더 갔었지만
등반은 하지 않았고 월정사 부근 산책 정도였고
너무도 강렬한 기억은 그냥 추억의 장소로 남겨놓은 것이 맞을 것도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 때 나와 함께였던 그들도 오대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날의 용사들이 모두 함께 모이는 날이 있으려나
8명 중 3명이 현재 외국 거주 중인데 말이다.
늙으면 옛 친구들이 저절로 생각나게 되는 법인가보다.
그리고 강렬한 첫번째에 대한 사랑과 지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방송 프로그램일 경우에도 그렇다.
어디든 장단장님과 감독님과 이 멤버들과 함께 할 것이다.
고마워요. <김성근의 겨울방학>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느라 수고하시는 분들.
(토요일에 본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의 사진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우주 탄생 이론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작가의 본 의도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해석도 나름 중요하다.
우주로의 여행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하루 하루가 여행과 맞먹는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