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재미있는 제 2의 인생이 된다.
일주일간의 해외 출장에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고 나니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 2일차에 출장을 나갔었다.)
나나 우리집 고양이 설이나 모두 긴장이 풀어진 듯 하다.
고양이 설이는 한참을 아들 녀석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쭈볏쭈볏 자신의 서운함을 표시했었으나
나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졸음이 몰려왔다.
원래 긴장이 풀리면 그리고 안도하게 되면 잠이 몰려오게 되어있다.
오토매틱 시스템이다.
오전에 입국해서 오늘 몫의 일까지 처리하고 들어온 아들 녀석도 밥보다는 잠이 고프다고 하였지만
나는 먹고자야한다면서 저녁을 차려주었다.
오랜만에 준비한 아들 녀석 밥상은
두부어묵국(멸치로 진하게 간을 냈다. 사실 아들은 멸치 베이스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시댁에서 새로 얻어온 배추김치와 내가 담근 파김치, 부추김치 총 3종 김치 세트
소고기 볶음(거의 납작불고기 수준으로 고기잘게 다지고 양파넣어서 볶았다.)
고춧가루 뿌려서 간간하고 달달한 매운 어묵볶음
가느다란 김밥용 햄과 야채 볶음
그리고 디저트는 손수 사놓고 간 태극당 우유 모나카 아이스크림이었다.
당분간 노로바이러스때문에 해산물은 보기 싫어할 듯 해서 제외시켰다.
둘 다 너무 졸려서 식탁에서의 폭풍 수다는 떨지 못했다.
그렇게 일찍부터 잤으니 오늘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는 것도 당연하다.
일찍 일어났는데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러면 기분이 안좋다.
나는 일이 적당히 있어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다.
마치 게임에서 미션 하나를 클리어하는 느낌이랄까?(사실 게임을 하지 않아서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다만.)
오늘 아침 일어나서 약을 먹고 나니 다섯 시 반인데 할 일이 없는거다.
아들 녀석 도시락은 6시반 넘어서 준비해도 될 것이고
그것 준비하면 내 아침도 해결될 것이고
그리고는 오늘 종일 아무런 약속도 없고 꼭 해야할 일도 없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어제까지 모두 다 처리했다.
엔진오일 교환도 브러셔 교체도 다했더니
오늘은 꼭 해야할 일이라고는 진짜 하나도 없다.
텅 비어있는 탁상달력을 보는 일은 마음이 조금 그렇다.
그렇다고 다시 누울 수도 없고 해서
금요일 오전 후배들과의 연구과제 줌회의 자료를 주섬주섬 만들었다.
아이디어 초안 수준이지만 멋진 후배들과 함께 업그레이드해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STEM 학습 프로그램 경연에 제출하려 한다.(그리되면 참 좋겠다.)
그리고는 4월 2일까지 제출하면 되는 에코스쿨 공간 디자인 최종 검토안을 작성했다.
오늘 다하면 내일 또 이런 기분이 들까봐 천천이 작성할 예정이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이 두 개뿐이다.
이것마저 하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학교 아침 등교 버스 탑승 안내 알바를 한다고
할 걸 그랬나 싶다.
아침 7시 이전에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학교 버스에
안전 탑승과 하차를 책임지는 것인데
장소가 집 앞이라면 해보겠는데 그게 아니라서 패스했다.
나에게 알맞은 정기적으로 꼭 해야 할 일.
내가 이렇게 자의적이지 못하다.
강제성과 의무 좋아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일이 제 2의 인생에 가장 당면한 과제이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라 한다.
물론 책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이지만 눈이 점점 침침해서 안경을 벗고 읽어야 한다.
그게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읽고 싶은 책이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아들 녀석 책상위에 있더라.
(감히 평은 하지 않는다. 그럴 레벨이 아니지않는가?)
그런데 한 권 더 있던 자기개발서는 도저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라.
더 이상 개발할 무언가가 있어도 이제는 시도하기 힘들다.
하던 것만이라도 계속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라 한다.
지하 커뮤니티센터 PT 안내문도 꼼꼼이 읽었는데
이제 운동은 개인 운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속도와 양이 달라서 불가능하다.
기구도 무겁거나 버겁다.
개인 PT는 선생님이 지겨우실게다.
러닝머신에서 살살 걷는 것은 비가 오는 날이나 하고
다른 날은 구경하면서 꽃 보면서 야외를 걷는 것이 더 낫다.
수집된 데이터를 보니 하루에 만보 걷기를 매일 하는 것은 버겁고 육천보 정도는 보통 걷더라. 그럼 되었다. 그 이상은 무리이다.
골프도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내심 생각한다.
누군가는 봉사활동을 하라 한다.
일평생이 봉사였던 삶이다.
내 돈을 더 보태서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하고
늘 무언가를 해주었던 삶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장학금 기부한다 생각한다고 대답했었다.
봉사는 할만큼 했다.
그 사이에 안했던 사람들이 좀 해보시라.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지기는 한다.
나는 즐겁고 의미있는 강의가 하고 싶은 거다.
내가 아는 것들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보수는 작다해도 의미있는 교육을 하고 싶은 거다.
일평생 했지만 여전히 또 하고 싶은 일은 그것이다.
질리지도 않냐고 하실테지만
수업은 항상 대상이 다르고 나의 수업 방법이 다르다.
그러니 질릴 리가 있나? 매일이 두근거리고 재미있다.
이런 사람 참 드물기는 하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유니크한 사람이다.
(오늘 아들 녀석 도시락은 설탕 조금, 우유 조금 넣어 저어준 달걀물 입힌 식빵 구이와 사과이다.
내 아침이기도 하다. 먼저 먹어본다.
그래야 이상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아직 아들 녀석의 소화기관은 정상이 아니다.
음식에 당분간 조심해야 한다.
아들 녀석이 사온 망고 말린것은 여전히 맛있다.
설이가 자기 먹는것인줄 알고 자꾸 내 주위를 맴돈다.
니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