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라는 무서운 함정
어제 저녁에는 글도 쓰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간신히 설거지만 마쳤다.
그저께와 어저께 같은 증상의 발현이다.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고 자면서도 꿈에서도 생각했다.
집에 있다보니 특별히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조금씩 생각날때마다 먹는 형태가 된다.
그렇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이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는 안 그러셨다.)
그래서 어떤 패턴이 되냐하면 저녁 반찬을 마구 하거나 산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하니 말이다.
일종의 욕구불만의 표현이다.
어제 저녁에는 우삼겹 얇은 것 조금 굽고
고기양이 적을까 싶어서 소시지와 베이컨 하나도 굽고
뿌리는 계속 키울 수 있는 조그만 상추 종류 하나 사서 윗 둥은 짤라서 씻고
쌈장이 없어서 볶음고추장 내어놓고
두부와 신김치 쫑쫑 썰어넣고 청국장을 끓였다.
(사진은 어제 저녁 사진이 아니다. 그저께 나의 혼밥 사진이다.)
그 사이에 먹은 계란물 덮은 식빵 한조각과
중간 중간에 집어먹은 망고 말린것과 쌀과자
사과 반의 반쪽과 어묵볶음과 밥 한 숟가락으로는
에너지가 부족했었는지 갑자기 저녁 식사에 폭주 행보를 보인다.
그리고 그 폭주에 아들 녀석이 기름을 부었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맛난 밥을 먹기는커녕
일을 한다고 노트북을 보다가
<비밀의 숲> 이라는 무서운 드라마를 보다가
(탄탄한 짜임새의 드라마인 것은 알겠는데 무서운 것은 딱 질색이다.)
도통 나와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주일이나 출장을 다녀왔는데 말이다.
나는 하루종일 고양이와의 대화밖에 없는데 말이다.
즐거운 대화를 하면 식사 속도가 늦춰지는데
대화마저 없으니 먹는것에 열중할 밖에.
그러니 더욱 빠르게 밥 먹는 속도를 내다가는 덜컥 얹힌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면 졸음이 빠르게 밀려온다.
이건 밀려오는 정도가 아니다.
며칠은 잠을 못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내 의지로는 웬만해서 막을 수 없는 졸음이다.
설거지를 간신히 끝내고는 침대에 눕고 그것으로
어제 저녁 나의 일과는 끝이다.
3시간 정도 정말 죽은 듯이 자고 나면 조금은 정신이 차려진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아마도 나의 이런 상태보다 열배는 심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맛있게 많이 드신 날 여러번 쓰러지셨었다.
잠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정신을 잃게 되는 법이다.
병명은 저혈압 쇼크라고 했다. 아주 드문 경우라고.
먹을 것이 갑자기 위 속에 많아지면
그것의 소화를 위하여 혈액의 많은 양이 위로 몰려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저혈압 쇼크 상태가 심하게 온다고.
아버지는 식당에서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119를 타고 후송된 경우만도 여러번이었다.
그렇게 쓰러지고 나면 수액을 맞고 땀을 엄청 흘리고 한숨 자고 나서야 그제서야 눈을 뜨시곤 하셨었다.
집에서 식사를 하신 경우에는 쓰러지신 적이 없다.
그렇게 맛난 것이 집에 준비된 경우도 적고
(엄청 미식가이시다.)
평소에는 많이 드시지도 않았다.
(맛난 것이 있을때만 대식가로 변하신다.)
그 쓰러지는 현장을 봤던 나로서는
어제와 그제 저녁 식사 후 몽롱함이 무섭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외식의 경우 조금씩 먹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한다.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식욕을 최대한 참아본다.
그러므로 나와 같이 맛난 것을 먹는 분들이시여.
많이 먹으라고 자꾸 권하지는 말아주십사 부탁드린다.
집에서야 졸음이 몰려오면 누우면 그만인데 외부에서는 그럴 수가 없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정말 민폐녀로 등극하게 되니 말이다.
(집에서는 그 속도와 욕구를 제어하기 힘들고
어제와 그제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
유전이라는 무서운 함정에 빠지지 않게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야겠다.
이제 저녁 식사도 맛난 것을 가급적 준비하지 않아야겠다.
아들 녀석도 간단히 닭가슴살만 먹겠다하니
(일생이 다이어트인 것이 어찌 그리 나를 닮았나 미안하기만 하다.)
나도 반찬 딱 하나씩만 준비하는 스타일로 바꾸어야겠다.
식비가 엄청 줄겠다.
그런데 나의 음식 만들기와 맛보기에서 오는 낙은 절반으로 줄어들겠다.
먹고 싶은 것을 글로나 남겨보는 대리만족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을텐데 말이다.
맛집 유튜브를 찍으시는 분들은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유전이란 무서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