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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번만 생각나면 참 좋겠다만.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는 비법을 찾고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여유 시간이 많이 생기면 좋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인가?

자꾸 자꾸 잘못한 오만가지 생각이 나서 괴롭기만 하구만.

쉼이 있는 삶이 좋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인가?

너무 많이 쉬니까 오히려 허리가 아프구만.

느리게 느리게 사는 것이 소확행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인가?

모든 일을 느리게 느리게 해도 하루가 너무 길고 길구만.

오만가지 생각 중에 잘못해드린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나는 것이 제일 괴로운 일이다.

어제는 냉면집에서 손으로 만두를 허겁지겁 드시는 어르신을 보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우울했는데

오늘은 더더욱 많은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는 그리 친절하고 자상한 아버지가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다.


먼저 아침에 발톱 정리를 하다가 든 생각이다.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내성발톱이다.

우리가족 중 나와 아버지만 그랬다.

내성발톱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시기에 자꾸

발톱 끝이 살을 파고 들어가서 아픈 일이 반복되었다.

손톱은 눈에 보이니 항상 짧게 깍는데

발톱은 바쁘면 정리를 잊어버리기 쉽고

그러다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고

스치기만해도 아파지게 된다.

결국 나는 외과에서 두어번 발톱을 생으로 자르기도 했었다.

오늘 아침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서 재빨리 만사를 제쳐놓고 발톱 정리부터 들어갔다.

힘들어도 지금 정리를 안하면 더 큰 일이 생기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고

그때마다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친정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나기 마련이다.

아버지와 닮은 점은 많지만 일단 발 볼이 넓고 크기가 크다는 젊이 닮았고 내성 발톱이 닮았는데

희한하게도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무지외반증은 엄마를 닮았다.

총체적 난국인 나의 발을 그래서 나는 좋아라하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어서 발이 드러나 보이는 샌들이나 슬리퍼 신는 것을 좋아라 하지 않는다.

앞이 트인 실내화를 주로 신는 학교에서도 위 사진처럼

앞이 막힌 신발 뒤를 잘라서 실내화로 신었을 정도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DNA 악성 콜라보레이션이

내 발과 발가락에 선명하다.


월요일 12시에 송출되는 <김성근의 겨울방학>을 보다가 친정아버지가 생각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일단 말투와 어조가 비슷하시다.

일본어와 경상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감독님의 말을 들을때마다 깜짝 놀랄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특정 부분에서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한없이 미안해졌다.

감독님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교토>에 도착해서 신간센 기차에서 내리시는 장면에서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셨다.

이미 걸음걸이가 많이 힘들어진 아버지를 모시고

KTX 기차를 타고 갔던

마지막 고향 방문길의 기차에서 내리시던

아버지 표정이 딱 그러셨었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이셨고 돌아가실때까지도

늘상 부산을 그리워하셨었다.

바닷가 내음도 비바람 소리도 영도공원도 고래고기를 파는 자갈치 시장도 늘 그리워하셨다.

부산에 사셨던 고모가 보내주시는 큰 사이즈의 생선도

대구 아가미젓과 함께 담근 시큰한 장게김치도(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꼬들꼬들한 미역귀 말린 것도 부산의 맛이라면서 그리 좋아라 하셨었다.

사실 우리 친할머니는 음식을 그리 잘하시는 분도 아니셨다는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지만

야구 경기에서까지 유독 부산팀을 응원하셔서

너무 편파적이고 지역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냐고 동생들과 흉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그 잔잔한 BGM 이 깔릴게 뭐냐.

나는 또 눈물샘이 살짝 터졌다.

죽어서라도 부산에 묻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딸만 있는 집 장녀로서의 무심함과 미안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만.


오늘도 딱히 할 일이라고는 없지만 뒤쳐지는 것이 싫어서

공모전에 낼 STEM 프로그램도 구성하고

천문학 부분 요약 정리 파일도 만들고

염색 날자도 변경하고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아 저장하고

내 명함 디자인을 미리 캔버스에서 내 마음대로 끝내고 200장 인쇄를 예약하고

(다 나누어줄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만)

오늘 휴가를 쓰는 아들 녀석과 함께

달걀, 햄, 상추, 무말랭이, 볶은 김치를 번갈아 넣은 김밥도 맛있게 말아 먹었지만

아직도 오늘 하루는 많이 남아있고 아버지 생각은

벌써 두 번이나 했다.

미안함과 죄송스러움만 남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너무 자주 생각나는 것은 바쁜 일이 없어서이다.

결코 내가 효녀라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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