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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을 볼수 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자.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역시 사람은 멘탈에 좌우되는 것이 틀림없다.

어제 날은 춥지도 않았는데(저녁에 실시간 기온이 20도라고 나오는거 실화냐?)

보통날과는 다른 저녁 산책을 하고 나서인지

내가 희망하는 재취업 기회의 무산이 되어서인지

(첫 번째 시도에 되는 그런 행운이 올 리가 있나.. 나랑 딱 맞는 전공도 없었는데.

그렇게 위안을 해보지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사실이다.)

잠을 많이 잤는데도 목은 잠기고

눈에는 눈물과 눈꼽이 끼는 3월 들어서

가장 나쁜 컨디션이다.

학교에 나가서 정신없이 일했을 때 아픈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일평생 가장 편하고 할 일이 없는 시기인데

여전히 감기약을 먹어야 되는 이 처지가 도무지 이해되지는 않는다.


어제 나를 위로해주는 막내 동생과의 톡에서

우리 둘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바로 아파서 누워만 있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다.

40대 후반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믿어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고는 지금껏 대화 한번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벌써 5년째 누워만 있는 상태이다.

가끔식 얼굴만 보고 아무런 도움도 못되고 다만 기도의 마음만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도 이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제부와 조카들의 마음은 썩어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막내가 그런 말을 했다.

<흐리고 별로 쨍하지도 이쁘지 않은 오늘 하늘인데 이걸 올려다보지 못하는 언니는 얼마나 슬플까?>

그리고는 너무도 미안하다 했다.

나도 그렇다.

산책을 하면서 꽃을 보면서 고양이와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이런 일상을 하나도 못누리는 다만 누워서 간간이 소리만 들리는

(이제 눈도 거의 안보이는 듯하다. 손을 안 흔들어준다. 눈도 못맞춘다.)

것으로 생각되는 아픈 동생 생각을 하면 미안하기 그지없고

나의 일상이 동생 몫까지 함께 하는 거라고,

그러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내가 고양이 설이를 이뻐하듯이

동생은 강아지 칸초를 이뻐라했었다.

지금 많이 늙은 강아지 칸초는 내 동생이 누워있는

그 방 앞에서 아픈 동생을 지키고 있다.


비 냄새를 가득 담고 있는

(비가 많이 와야 한다. 산불 지역에 특히)

오늘 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그리고 힘을 내서 또 다른 지원서를 작성해보자.

각 대학마다 지원서 틀과 과정이 천차만별이다.

시간이 꽤 걸린다. 통합할 수는 없는 것일까?

목표는 다 같은데 말이다.

강의 전담교수를 구하는데도 대학은 여전히

연구 논문을 중요시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현장 교사를 하면서 학회지 논문을 작성하고 게재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일을 대강대강 하면 모를까.

몸과 마음을 모두 갈아 넣어야 한해에 논문 한편이 가능할까말까이다.

강의 전담이면 강의 역량에 더 포인트를 두어서 선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내 전공이 필요한 대학과 학과가 별로 없다는 바로 그점이다.

원래 이론과 현실은 이렇게 다른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몫까지 힘을 내 본다.


( 이 글을 쓰고 날씨와 멘탈과 감기약의 콜라보레이션 효과로 다시 누운 내 옆으로 고양이 설이가 와서 같이 누워있다. 너 없으면 어쩔뻔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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