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귀여운 스타일이 좋긴 하다만.
자꾸 나의 일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많으면 이런 법이다.
가방도 신발도 음료도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은 나에게 가방, 신발, 음료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중요했던 헤어 스타일 변천기를 돌아본다.
내가 기억하는 유치원 때 머리는 쥐파먹은 것 같은
짧은 머리 혹은 단발머리였다.
친할머니 장례식에 따라갔던 사진을 보면
앞니는 빠져있고 머리는 단발머리에 꽃핀을 꽂았고
유치원 원피스 교복을 입고 있었더랬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사진 속의 나는 그랬다.
초등학교때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딸만 넷인 어머니는 우리 머리를 묶어주는 일을 싫어하셨었다. 힘들만도 했다.
자고나면 긴 머리가 엉키고 엉켜서 큰 대빗으로 머리 빗어주는 것도 귀찮아하셨고
그 때는 머리에 이가 기어다닐 시기여서 더더욱 머리 감기고 머리 빗어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거다.
딸 넷이 머리를 감고나면 빠진 머리가 수채구멍을 막을 정도가 되었고
학교에서 이가 옮아온다고 머리를 쌍둥 잘라주셨었다.
어머니가 직접 말이다.
마당에 신문지를 넓게 펴놓고 그 아래에 앉아서 한 명씩 머리를 자르고 바로 그 옆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았다.
자르다 보면 금방 가위날은 안 들게 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큰 딸인 내 차례가 되었을때쯤에는
가위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반은 자르고 반은 그냥 묻어나는 정도가 되어 있으니
내 머리는 짧은 산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내 머리는 완전 직모이다.
별로 붕떠보이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은 교복과 단정한 귀밑 3Cm 단발머리
고등학교 시절은 교복과 단정한 머리 두 번 묶기였고 그래서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그 조건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바르고, 앞머리를 붕 띄우고,
옆 애교머리를 내리고 하는 앞서가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1도 들지 않았었다.
멋내고 유행에 앞서가는것에는 영 젬병이다.
고3 중반 갑자기 두발자유화가 선언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머리를 짧게 커트하고 다녔다.
머리가 길면 공부에 방해된다는 모범생다운 굳은 신념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파마도 했다가 길이도 길렀다가 잘랐다가
이리 저리 내 얼굴에 맞는 헤어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은 나름 하였으나 매번 실패의 경험만 쌓였다.
여러번의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멋진 헤어스타일의 반은 얼굴이 좌우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아들 녀석을 키우는 동안 나는 파마를 별로 하지 않았다.
아들녀석이 파마머리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은 생머리는 젊은 사람,
파마머리는 늙은 사람이라고 대입되어 있었나보다.
아들의 기를 죽일수 없어서 30대까지는 생머리를 유지했었는데
어느 날인가 이제는 파마 머리를 해도 된다하길래(엄마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알았나보다)
곧장 볼륨감을 살리는 파마 머리로 변신하였다.
슬슬 내 머리 정수리 부분이 납작해지기 시작했던
바로 그때였다. 나이스 타이밍 이었던 셈이다.
정수리 부분을 살리고 아래 부분은 바람머리를 만들어서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스타일을 제법 오랫동안 유지했었다.
그때가 나의 헤어스타일의 전성기였을듯하다.
그러다가 50대가 되어서 머리를 묶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머리를 감고 하루는 그냥 늘어트린 형태로 가고 다음날은 하나로 묶고 출근하는 이런 패턴을 반복하였다.
특히 여름철 더운 날 최고는 머리를 묶어주는 것이었고
다행이 묶는 형태와 목을 드러나는 형태가 나랑은 잘 맞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60대에 접어들면서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것이 너무 초라해보인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살이 빠져서 목은 더욱 가늘어지고 피부는 늘어지게 되는데
머리를 묶으니까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는거다.
내가 하고 싶은 머리 형태는
부유한 사모님들이 하고 다니는 부드러운 웨이브의 찰랑찰랑 자연스러운 머리인데
이 머리 형태를 하려면 파마를 꼭 해야하고 매일 드라이와 헤어제품을 활용해야 한다.
기본인 내머리가 직모이기 때문이고
나의 머리 만지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여
이런 형태 유지는 쉽지 않다.
파마하는 것도 점점 싫어져서 할 수 없이 당분간은
직모 형태를 극대화한 단발로 지내는 중이다.
단 정수리 부분까지 납작 붙어서 얼굴이 대문짝만큼 커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머리 가운데 부분을 약간 세워서 핀을 꼽고 다니는 꼼수를 쓴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일테지만 마음은 조금 안도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제 머리색은 자연 흰색이 될 것이고
(염색을 하지 않고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버틸 수 있을까나? 아직은 그때는 아닌것 같다.)
머리 모양은 점점 짧은 커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할머니 머리로 가기전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버티기 중인 셈이다.
(말로 설명이 잘 전달될까 싶어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나름 괜찮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면 그 내용은 완전히 이해되었다는 뜻이다.
비쥬얼싱킹이라는 용어가 그런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