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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47

도시락은 웬만해서는 맛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정년퇴직을 한 3월 이후에 가장 많이 방문한 공간은 백화점이다.

물론 다 같은 백화점은 아니다.

오늘은 이곳으로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그렇지만 모두 종착점은 백화점이다.

백화점이 목적일 수도 있고 산책 끝에 들리는 곳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아주머니들이 왜 백화점을 좋아라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날씨에 상관없는 쾌적함과

아이쇼핑을 통해서 눈높이를 상향시킬 수 있는 많은 상품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는 천국이 따로 없다.

소량씩 살 수 있는 반찬들도 그렇고 요새 트랜드 음식을 파악하는데도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게다가 시식용 음식도 주니 말이다.

그런데 정신을 잘 차려야지 아니면 지갑이 마구 마구 열리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백화점 지하 푸드 코너에서 파는 맛난 음식들을 그곳에서 혼밥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온전히 나의 식사량 문제이다.

음식은 너무 먹고 싶은데 양아 너무 많아서 반은 남길 듯 하니 선뜻 주문을 하게 되지 않는다.

맛난 것을 많이 먹으면 느끼게 되는 졸림이 무섭고(친정아버지 사례를 기억해서 그렇다.)

식사 속도를 지키기도 힘들다.(숨이찰 정도로 자꾸 속도가 빨라진다.)

특히 면 종류는 더욱 더 많이 먹기가 쉽지 않다.

먹는다고 먹어도 면이 영 줄지를 않는다.

사진은 한강뷰를 보면서 맛난 라면을 먹는 노들섬 분식집 사진이다.

사진으로는 그리고 음식을 받았을때는 너무 멋지고 맛있었으나 결국 나는 반 정도를 남기고 말았다.

조금 매웠지만 맛났는데 말이다.

더 이상은 먹지 못하는 이런 일이 빈번하니

결국은 형편이 영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결국은 포장을 해서 집으로 오곤 한다.

그럴 때 가장 선호하는 것은 김밥이나 유부초밥이다.

간편하고 냄새도 덜 나고 들고 다닐 때 흔들려도 고민이 덜 된다.

그런데 김밥과 유부초밥보다 나를 더 대접하고 싶다면 덮밥 형태의 도시락을 산다.

신간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나게 먹었던 도시락과

엄마가 사주시던 노란 양은 도시락 속의 그 반찬들보다 맛있는 것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명란과 우거지볶음이 올라간 흰밥 도시락과

야끼도리와 계란덮밥 도시락 중 고민을 하다가(푸드 코너를 세바퀴나 돌았다.) 후자를 선택했다.

포장을 해오면 좋은 점이 또 있다.

먹을만큼만 먹고 남겨서 다음끼에 또 먹으면 된다.

야끼도리는(닭과 돼지고기 두 종류였고) 2/3만 먹었고

이미 만들어둔 유부초밥이 있으니 오늘 저녁까지도 해결이 될 것이다.

한때 도시락을 열심히 먹었던 시절과

고민 고민하며서 도시락을 쌌던 그 시절을 회상하게도 하고

하나의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니 기쁘지 아니한가?


그나저나 오늘 백화점에 있던 그 시각은 매우 중요한 발표가 있던 시각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이 세상은 자기가 할 일만 제대로 잘하면 큰 문제가 일어날리가 없다.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든든하게 도시락 점심도 먹었으니

오늘 아침 ZOOM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STEM 프로그램 안을 정교화하는 작업을 시작해보자.

하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고 좋다.

그렇다고 하던대로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하나라도 발전하는 오늘을 만들기 위한 나의 노력이 평생 내가 해온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주는 것은 나의 먹거리들이다.


(어제 만들어둔 고수김치와 오이지무침이 맛나다.

역시 제철 먹거리를 조금씩만 해먹는게 최고다. 엥겔지수는 높아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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