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대한 일관적인 두려움

곧 올 더위를 기다린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기억하는 나의 삶 최초의 순간에서부터 지금까지 더위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번에 한번 언급했던 대학교 1학년 첫 여행 오대산 산행한 날.

찬 물로 머리를 감았던 유일무이한 날 그 정도이다.

아마 몸의 세팅 자체가 더운 것을 그렇게 예민하게 느끼게 안되어 있는 모양이다.

물 마시는 양도 많지 않고 땀의 양도 별로 없다.

(몸에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추위는 사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낄 정도이다.

그러니 추운 나라로의 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다.

오로라 보러 가기, 극 지방 여행하기 이런 것은 아예

내 머릿속에 있지도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추위가 그렇게 무서워진 것은?

무서움을 알아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모르면 두려움도 없다.



내 어린 시절은 무지 추웠다.

그래서 지금도 겨울은 싫은 계절이다.

난방 기능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옷의 기능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작과 동그란 석탄을 때는 것으로 차가운 기운만 없애는 정도였던 학교도 너무 추웠고

(난로 근처 자리에 앉은 학생들만 얼굴이 벌개 졌다. 난로 근처가 아니면 발이 시려워서 동동거려야 했다.)

집까지 걸어오는데도 찬바람은 항상 슝슝 불었고

(모자와 귀마개, 장갑 3종 세트가 없이는 동상에 걸리곤 했다.

동상의 초기 증상은 피부가 붉게 되고 간지럽다.

빨개진 몹시도 가렵던 귓볼을 손으로 마구 문질러 주는 것이 내 귀가 패턴이었다.)

그러다가 연탄불이 잘 피워진 안방 아랫목에 손을 집어넣고 누우면

(그때는 아랫목에는 무조건 이불이 덮혀있었다.

보온의 개념이다. 그리고는 밥그릇을 묻어두었다.

보온 밥통이란게 없었으니 말이다.)

추위에 떨었던 몸이 사르르 녹으면서 잠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서야 나는 다시 일어나서

숙제도 하고 저녁도 먹고 TV도 보는 일과를 보냈었다.


그런고로 내 일생의 1/3은 내복과 함께 보냈다고 보면 된다.

11월 첫주 내 생일날 부터 내복을 찾아 입는다.

그리고는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되면서 내복을 벗는 패턴이었다.

물론 겨울에는 내복의 두께가 더 두꺼워지고

초겨울과 봄에는 조금 얇은 것으로 바뀌기는 했다만.

이런 내복과 헤어진 것은 아마도

오리털 패딩이 나오고 나서

그리고 갱년기가 오면서 부터였다.

오리털 패딩의 탁월한 성능과

갱년기가 와서 체온이 살짝 올라간 이유가 작용했던 것이다.

내복에서 조금씩 탈피하면서 그 자리를 메꾸게 된 것이 전기담요이다.

침대 아래 토퍼 그 아래 전기담요를 깔아 놓고

가장 낮은 단계로 해놓으면 약간의 온기가 돈다.

그 옛날 엄마가 연탄 열심히 갈아서 불 활활 맞추어놓았던 아랫목에의 느낌에는 택도 없지만

두려웠던 추위와의 싸움에서 견디고 돌아온 하루를 위로해준다.

그 느낌이 좋아서 귀가 직후나 잠들기 직전에 아직도 조금씩 틀어놓는다.

5월이 오면 더 이상 사용하지는 않을듯 하다만.


내가 걸려본 동상 부위

귀와 발이었던 것은 과학적으로 맞다.

귀는 가리지 않고 드러내고 있으니 추위에 취약하고

차가운 공기는 무겁고 밀도가 커서 아래로 가라앉게 되어 있으니

발이 가장 추운 공기에 노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옛날 털로 둘러싸인 고무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털이 들어간 겨울용 신발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커다란 발인데 털까지 집어넣은 것을 신으면 발만 둥둥 떠다닐 것 같아

차마 그것까지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지금도 목에는 항상 머플러를 두르고 다닌다.

겨울에는 물론 보온용이고 여름에는 에어컨 대항마이다.

목에 찬 바람이 느껴지면 곧 목감기의 전초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늙고 말라서 추해진 목주름을 가리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그런데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가 나에게

추위에 대한 역사적이고 일관적인 두려움을

조금은 약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작년 겨울에는 내복은 안 입고

상의는 티셔츠 두 개를 겹쳐 입는 방법으로

하의는 기모 들어간 바지로 버텨냈다.

이러다가는 나 같은 사람도 추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더위가 무서워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더위는 두렵지 않다.

된통 당해본 경험이 없으니 말이다.

가끔 나같이 신기한 체질의 사람이 있긴 한 것 같다.

어제 SNS에서 아직도 전기담요 살짝 틀고 사는 사람을 찾는 게시물을 보았다. 많이 반갑더라.

좋아요는 누르지 않았다만.

나는 오늘도 훅 들어오는 따뜻한 바람의 더위를 기다린다.

오전 산책을 나섰을 때 코에 들어오는 그 바람이 따뜻하기를 희망한다.


(다행이다. 차가운 바람이 아니다. 역시 계절은 감출수가 없다. 곧 여름과 더위가 몰려올것이다. 하나도 두렵지는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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