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남대문, 동대문 그런데 북대문은 없나요?
상품권이나 쿠폰, 티켓 등을 오래 가지고 있지 못하는 성향이다.
아들은 그게 어디로 가거나 사라지는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하는데
나는 그냥 미뤄놓은 숙제가 남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증권투자 이런 것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증권의 증자도 싫어한다. IMF 때 증권회사 지점장이었던 남편이 집을 홀라당 말아먹었었다.
오늘은 선결재를 해놓은 전시회를 보러 나섰다.
오늘 딱히 봐야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이번 주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한 것이 없다는 괴로운 생각이 나를 비오는 밖으로 이끌었다.
비가 오는 날 집을 나선다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긴 하다.
내가 보러가려고 일찍 티켓을 끊어둔 전시회는 DDP에서 열리는
미술계에서 혁신적인 아티스트라고 주목받는 톰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 무한대> 라는 전시회이다.
전시 안내를 살펴보다가 눈에 띈 이유는 물론 과학과 관련된 소재가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과학과 예술과의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전시를 보는 것은 나의 취미생활인 산책과 연결고리에 있다.
동네 투어를 하다 멋진 전시를 감상하게 되면
마치 이전 계절에 입었다가 넣어둔 외투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한 느낌이다.
학기말 천문학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던 영화 <Mars> 촬영 장소라고 생각이 들 정도의
우주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합된 멋진 전시였다.
몇몇 작품은 영재 대상의 수업 자료로 활용해볼까 할만큼 재미있는 것도 있었다.
단지 디지털기기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모션이었다면 더더욱 실감이 들었겠다는 후기를 덧붙여본다.
이 내용은 과학 수업을 다루는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보겠다.
내가 교사였다면 분명 융합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관람을 시도했을 것이다만
오늘은 혼자였으므로 전시도 보고 그 주변 거리 탐방도 해본다.
어디를 갈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DDP 가 을지로 4가와 걸어 다닐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마지막 학교에 부임한 직후였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 이유는 내 머릿속에 각인된 동대문이라는 위치의 오류 때문이다.
강서 지역에 살던 나에게 동대문은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오죽하면 동대문에 위치한 이화여대 대학병원을 멀다고 안갔었겠는가?(지금은 물론 그 자리에 없다.)
지금은 아픈 동생이 동대문 의류매장에 쇼핑가자고 할때마다 멀어서 안간다고 했었다.
내 머릿속의 서울지도는 기준점이 강서구나 양천구인 셈이다.
오랫동안 기준점이 잘못되어 있었다.
DDP 전시를 본 후 동대문을 눈으로 쓰욱 살펴보고 종로쪽으로 천천이 걸어가본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곳이 이전 동대문야구장이었던 장소임을 알려주는 라이트가 눈에 뜨였다.
아버지와 인생 처음으로 야구 구경을 갔던 곳이다.
내 머리 위로 날라오던 파울볼을 맞을까봐 아버지가 머리를 급하게 쑤셔박아주시던 곳이다.
대학 들어가서 멋진 친구들과 고교 야구를 보러 다녔던 곳이다.(그 친구들 모교가 야구 명문이다.)
생태 투어를 했던 흥인지문공원을 바라보면서
그때 함께 했던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기억났고
동대문 꽃시장을 지나면서 도시농부동아리와 함께 모종을 사고 심었던 그 날도 기억났고
방산시장 골목을 지나면서 아버지가 이곳에서 방수용품 관련 사무실을 하셨던 기억을 찾아냈고
광장시장을 지나면서 우리반 녀석들과 맛집을 탐방하던 그 때의 신남과 기분좋은 힘듬을 기억해냈다.
골목투어는 이렇게 옛 추억을 기억하게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게도 한다.
차를 타고 다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골목을 보게 되고
그 골목 속의 삶의 현장을 보게 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내 삶을 반성도 하게 되고
새로운 도약의 힘도 받게 되는 듯 하다.
다른 사람들도 어렵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는 동지 의식이 자연스럽게 드는 셈이다.
동대문에서 청계천을 걸어 종로 5가와 을지로 4가에 다다를때까지
다행이 비가 그치고 혹은 오더라도 가는 비가 내려서 도심 산책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을지로 4가에서 오랜만에 익숙한 파와 콩나물 듬뿍 해장국을 먹고(오늘이 제일 많이 먹었다.)
길만 건너면 예전 학교가 있는데 절대 그쪽으로
눈길 한번도 주지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사랑하다가 어찌저찌하여 헤어진
사연많은 여자가 되어버린
동대문 일대 산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오늘 체육대회하는 학교들이 많은 듯 한데 비가 내리는 것이 마치 동남아에서 보는 스콜이랑 비슷해보인다.
갑자기 폭싹 쏟아진다.
다행히 나는 집에 도착한 후이다.
그런데 갑자기 초등학생 수준의 질문이 생각난다.
분명 나올 예상 질문이다.
서대문, 남대문, 동대문은 다 알겠는데
그렇다면 북대문은 어디일까? 없는 것일까? 없어진 것일까?
(아마도 북대문은 혜화문인 듯 하다만 자세한 내용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래서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