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포기한 구체적인 이유 첫번째

나는 운명론자인가?

by 태생적 오지라퍼

친한 후배 교사들은 가끔 묻는다.

왜 교감, 교장 승진 안하셨어요?(못한거다.)

승진할 생각은 왜 안하셨나요?(하긴 해봤다.)

장학사 하실 생각은 없으셨나요?(가끔 들긴했다. 잠이 많아서 초근이 불가능하다만.)

이제 다 마무리했으니 그 이유와 과정을 한번 써보려 한다.

일부 내용은 지난 모 학교 컨설팅에서 이야기하기는 했다.

나에게는 후회와 반성 그리고 자책과 위안인 셈이기도 하고

이 글을 읽는 교사 후배님들에게는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이다.

나에게도 누군가 이렇게 미리 알려주었으면 내 교사 생활이 달라졌을까?

중간 중간 승진 생각이 들었다가 정보를 알아보았다가 그만두는 정도 말고 구체적인 이야기만 써보겠다.


원래 수업 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내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것은 <수석교사>라고 판단했고

자신이 조금은 있었다.

이미 학생들에게도 수업 잘한다, 재미있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었고(그것도 학원이 빵빵한 목동 지역에서)

수업 준비하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고 그것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수업 개선을 목표로 만든 직종이 <수석교사> 라고 판단했었고

수석교사 신청 서류 중 한 가지는 수업 영상을 쵤영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 해 서류를 제출하려고 그것빼고 다른 것은 모두 준비를 해놓았었다.

그해도 연구 수업할 과학교사 신청자가 없었고(늘상 없기는 하다.)

연구부장이었던 내가 총대를 매기로 했고

내 성향상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하고 싶어서

여름방학에 무언가 연수를 받아보려고 찾아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 사회가 변화에 그렇게 민감한 편은 못된다.

많고 많은 연수 종류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단 하나 <스마트교육> 연수가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하다니... 이거다....지금이나 옛날이나 스마트한것 엄청 좋아라한다.


연수를 받으러 갔더니 자꾸 스마트폰을 꺼내라 한다.

당시 나는 아직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비싸기도 했고 조금은 기계치여서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목동지역은 한 학급당 인원수가 많다.

그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가지고 무엇을 도모하자고 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과연 그것을 내가 해낼수 있을까?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수업 모델인 듯 싶었고

연수를 듣는 내내 이것은 하기 힘들다, 어렵다, 이런 말을 달고 살았지만

<새로운 세계이기는 하네>하는 마음도 조금은 들었었다.


그리고는 연구 수업의 날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딱히 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고 슬며시 새로운 세계 입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학생들의 현황을 살펴보니학원에서의 긴밀한 연락과 부모님들의 케어의 필요성 때문에

학생들이 오히려 스마트폰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일단 준비물은 되었고 내가 문제이다.

겸사 겸사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연수 교재를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중3 학기말 고사가 모두 끝난 다음인 가장 학생들이 편한 시기에

고등학교에서는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서(수험생 시기에 체력 관리가 필수이다.)

생명과학 교과 내용 부분과 연계하여 <스마트폰을 이용한 맞춤형 건강관리>라는 수업 지도안을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기도 하다.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

지금도 수업에 디지털기기를 쓰는것에 대한 찬반이 있는데 그때는 지금부터 무려 13~14년전이었다.

무대포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날 수업은 나보다 더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학생들 덕분에 즐겁고 신나는 수업이 되었었지만

수업을 참관한 선생님들은 표정은 내내 심각했고

수업 후 평가회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생각들을 그래도 착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더 중요한 일은 이 수업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수석교사> 제출 서류에 내려고 했는데

나보다도 더 정신없던 기획선생님이 영상 촬영기기의 배터리 충전이 안되어 있다는 것을 놓쳤다는 점이다.

(내가 물어는 봤는데 되어 있다고 하셨었는데... 아마 돌아다니던 사람 누군가가 발로 충전선을 찼었던 것 같다만.)

그것을 알게 된 순간 엄청 절망했지만

나는 그 영상 촬영을 위하여 다시 한번 그 수업을 하는 그런 수법을 쓰기는 싫었다.

누군가가 비꼬면서 이야기하는 연구수업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는 말에 빌미를 제공하기는 싫었다.

그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수석교사>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그렇게 훌쩍 나에게 승진의 하나의 방법이었던 <수석교사>가 날라갔다.

가끔은 아쉽기도 했지만 내 자리가 아닌 것이었나보다 그렇게 쿨하게 받아들였다.

승진하려면 이렇게 쿨하면 절대 안된다. 절실하고 또 절실해야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후 이 수업은 교육지원청의 우수 수업 사례에 뽑히고

의도치 않은 공개 수업을 다시 한번 하게 되고

그 과정과 내용이 다음날 7시 아침 뉴스에 등장하게 된다. 전화가 사방에서 온다.

나는 졸지에 서울시교육청의 스마트교육 선도교사로 우뚝 서게 된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스마트폰 센서를 조금 이용한 것 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이후 스마트교육은 디지털기기활용교육, 미래교육, 그리고 AI 활용 교육으로 이름과 내용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발전하고 여전히 찬반 논란을 양산해나가는 중이다.

그때 그 영상촬영을 담당했던 기획 선생님은 아마도 이런 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실 것이다. 잘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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