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일하는 장학사님들에게
어제 습관처럼 아르바이트 탐색을 위하여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를 공지사항을 들어갔더니
올해 중등 전문직(장학사) 1차 시험 합격자 명단이 올라와있었다.
올리는 이유는 장학사로 무언가 부적격 사유가 있다면 알려달라는 뜻이다.
사유를 올리는 것이 100퍼센트 반영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참고하겠다는 뜻인데 요즈음 장학사가 옛날처럼 권위가 높거나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진짜로 장학사가 학교 방문을 한다고 하면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가 청소하고 수업 연습하고 난리를 폈었다.
물론 나는 수업 연습을 절대 하지 않았었다만.(자신의 수업에 자신감이 없으면 교사하면 안된다.)
나의 훌륭한 후배 3명의 이름을 발견하고 축하와 격려의 톡을 보내두었다.
승진의 한 가지 방법인 장학사로의 전직을 왜 생각해보지 않았겠나? 생각은 물론 했었다만.
당시의 장학사 선발 시험 방식에 일단 문제점이 있었다.
학교 당 1명만 선발에 응할 수 있었다.
교원수 30명인 학교도 70명인 학교에서도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단 1명만 선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교장에게의 무한 복종과 손바닥을 비비는 아부가 판을 쳤었다.
술자리와 선물 봉투가 오갔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그 왕국에서 교장은 왕이 될 수 밖에 없는 후지고도 후진 시스템이었다.
물론 한참 전 이야기이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희망하면 선발과정 응시는 경력 몇 년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나는 생각보다 윗분들에게는 마냥 온순하지는 않은 편이며(이상한 것을 주문하면 얼굴에 싫은 표시가 확 난다.)
윗분들과의 술자리를 좋아라하지 않으며(일단 술을 먹고 흐트러진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막하는 말과 행동을 싫어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장학사라는 직무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개념 정립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학교에 1명 지원의 그 룰이 바뀌고 나서 갑자기 시험을 한번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따로 공부는 하지 않았다.
보통 시험공부하면 떠도는 이전 출제 문제집 확보라던가 스터디 그룹등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한번 경향을 살펴보겠다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절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선발과정 1차 시험은 교육현장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객관식과 주관식, 서술형을 섞어서 출제한다.
그런데 시험 문항이 진짜 중요한 교육현장에 대한 내용들이 아니라
교육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이슈들에 대한 교육청이 주입식 지시 방안을 달달달 외워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상식적인 교육학 내용도 일부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특히 서술형 문항은 더더욱 그랬다.
많고 많은 중요 현안 중에 가장 쓸데없고 교과제한적이며 중심 맥락에서 벗어난 문제였다.
관련 공문을 몽땅 외운 사람만 적을 수 있는 문항이며 자신의 의견과 교육적 소신은 일도 필요 없는 내용이었다.
장학사란 업무를 하는데 자신의 창의성은 반영되지 않는 업무라는 것을 알았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까라면 까는 그런 업무를 혐오한다.(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그러니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공부도 안했지만 사전 시험 성향 조사도 안했으니 말이다.
어떤 시험이든지 이렇게 접근해서는 합격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첫 번째 도전이 끝나고
장학사 시험에 본격적으로 도전할 것인가 말까를 고민했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행정적인 일보다는 학생들과의 수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정년퇴직때까지 쭈욱 이어졌다. 수업에 들어가야하는데 회의를 하고 있는 그런 시스템은 구리다.)
야근을 밥먹듯 하는 장학사 생활은 잠을 중요시하는 나의 생활 패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야근이 많은지는 한참 뒤 파견을 나가서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만.)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마음에 걸렸다.
거의 독박으로 아들을 케어하는 나에게 저녁 시간까지 일을 하게 된다면
당시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 녀석의 수험 생활 뒷바라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을 짓는 말을 하나 듣는다.
그해 나와 함께 장학사 선발 시험을 보고 당당히 합격한 그녀의 이야기였다.
<나 서술형 문제 만점이잖아. 내가 잘아는 오빠가 그거 나온다고 귀뜸해줬잖아. 1차만 붙으면 2차는 어떻게든 합격시켜준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아뿔싸했다.
내용도 충격적인데 오빠는 또 뭔가?
그때만 해도 3번 시험을 봤는데 떨어질 경우 아예
시험 볼 자격을 주지 않을때였고
그녀는 마지막 삼세번 시험을 봤을 때였다.
그리고는 한달 간 아프다고 병가를 내더니
2차 시험을 통과하고 의기양양 장학사가 되었고
이후 교감, 교장의 삶을 살았다. 전혀 부럽지는 않았다.
또 한가지 변명을 하자면
당시 2차 시험은 전공 심화 시험이었는데
예를 들어 지구과학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지구과학2 내용의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재직 선생님이 100퍼센트 유리하다.
당시 과학 장학사는 과학고 재직 선생님들이 다 차지했다.
왜냐면 수업 시수는 일반 학교보다 훨씬 적고(시험 공부할 시간이 많다.)
2차 시험은 매번 수업하는 내용이니 말이다.(매시간 수업이 시험 준비이며 복습인 셈이다.)
아니 장학사가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 컨설팅을 하는것도 아닌데 전공과목 시험이 왜 필요한 것이냐.
그것 때문에 대학 때 배웠던 책들을 다시 꺼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냐
그리고 장학사가 하는 일과도 전혀 연계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장학사 시험에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
나 나름의 논리적인 핑계와 도피점을 찾은 것이지만
이제 선발 시스템은 훨씬 업무와 합당하게 바뀌었고
여전히 장학사의 업무 범위는 무한대이고
학생들과의 민원이나 수업이 싫어서 장학사를 선택한 사람들도 몇 몇 있고
아직도 일부 권위적인 장학사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민원과 업무 사이에서 한달에 30시간 이상씩 초과근무를 하면서 열일하고 있다.
나보러 둘 중 하나를 다시 선택하라한대도
학생들과의 수업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행정적인 일을 싫어하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지만 수업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민원이란 교사에게도 장학사에게도 존재한다.
말도 안되는 민원과 발전적인 제언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또 안타까운 교사의 죽음이 있었다.
그 분의 영면을 기도한다.
오늘은 오랫만에 영재원 특강이 있는 날이다.
신난다. 저 담벼락의 장미처럼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