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떼면 다친다. 국룰이다.
남편이 아프게 되니 대화는 많아진다. 좋다고 해야하는 것인가?
주된 이야기는 하나뿐인 아들 녀석 걱정이다.
그러다가 아들 녀석의 크고 작게 다쳤던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기억났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시댁 아가씨 손주 녀석이 어디선가 머리를 다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나서 병원 응급실을 다녀왔다는 말을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CT 상으로는 이상이 없다하는데 구토도 하고 힘이 없다고 한다.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욱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보는 일은 눈을 떼지 않아야 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힘이 들고 그래서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없으며
온 정신이 아이에게만 쏠리는 그 시기가 육아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 육아의 어려움을 지금 육아를 하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보려 한다.
나도 잘 몰랐던 초보 엄마의 그 시기를 슬기롭게 버티기를 바라면서
응원의 심정으로 이런 상황을 조심하라는 뜻에서 오늘의 글을 쓴다. 목적이 있는 글이다.
제일 크게 다쳤던 일은 아들 녀석 다섯 살 정도 였던 것 같다.
추석인지 설날이었는지 명절이었다.
시댁에서 제사를 지낸 당일 오후였던 것 같다.
그 전날부터 내려가서 제사음식 준비를 하고(그것만으로도 지쳤다. 사실)
당일 오전 제사를 지내고 났더니 시댁 형님과 아가씨네 가족이 방문을 했다.
그때 나는 친정에 갔어야 격이 맞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은 물론 했었는데
남편이 형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상차리기와 설거지 지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아들 녀석은 두 살 정도 많은 아가씨 아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무덤덤에 육아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남편은 아들 녀석을 주시하지 않고
형제와의 대화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형제들 아무도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나보다.(시댁이 무덤덤의 분위기이다만)
나는 등을 돌리고 주방에서 설거지 중이었다.
아이가 어릴때는 아이를 잘 볼 수 있는 주방 구조가 꼭 필요하다.
갑자기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아들 녀석은 방바닥(정확히 이야기하면 방문턱이다.)에 넘어져 있다.
그 방문에 시아버님 운동용 매달리기봉이 있었는데 거기 매달려서 다리를 흔들다가 앞으로 떨어진 것이었다.(나중에 들어보니 그랬다.)
물론 두 살 위 아가씨 아들이 한번 해보라고 부축했다고 하고
매달린 상태에서 다리도 흔들었다고 한다.(나중에 알았다만 한마디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몸의 중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팔의 힘이 약하니 떨어져 버린거다.
아들 녀석은 차마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본 순간 죽었나보다 생각했다.
등위로 숨쉬는 징후가 안보였다.
얼굴을 돌려서 안아보니 이미 턱과 코 주위가 부어올라서 얼굴을 가늠할 수도 없고
소리내서 울지도 못한다. 입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코가 없어졌는줄 알았다.
순식간에 부어오르니 코나 입이 보이지도 않더라.
머리가 하애졌다는 표현이 무슨 소리인지 십분 이해했다.
일단 아이들 안아주고 입에서 나는 피를 닦고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 와중에 남편은 다른 형제들 기분 상하는게 더 중요하지 별일 아니라고 쉴드를 친다.
그런 남편에게 짜증을 낼 정신도 없다.
명절날이고 시댁 근처에 병원은 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고
대학병원을 가야할 정도인 것 같은데 이미 야간이고 사람은 엄청 많을 것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친정 아버지 덕분에 많이 다녀봐서 실정을 알고 있었다.)
찬 찜질을 해주면서 일단 시댁 사고 장소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데 차 안에서 아이 몸이 벌벌 떨린다.
얼마나 놀라고 아플 것이냐?
그리고는 기력이 다했는지 거의 실신한 수준으로 잠을 잔다.
수원에서 목동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더 붓거나 피가 왕창 나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다.
잠을 깨우지 않고 재우고 내일 아침 일찍 대학병원에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응급실에 가면 일단 결과 나올때까지 잠을 잘 수는 없고
특히 유아 응급실은 울음소리로 더욱 공포심이 들 것 같아서였다.
올바른 판단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고(아들 녀석은 푹 잤다. 기절인 것 같았다. 그래도 많이 아프면 그렇게 잘 수는 없을테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지인이 있는 대학병원 치과에 갔다.
치과에 가서 악관절 등을 체크해야 한다고 의사 친구가 알려주었다.
의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이래서 매우 중요하다.
치과도 이런 외과적인 상황을 체크해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빨대로 음료와 미음만 흡입한 아들녀석을 데리고
치과에서 엑스레이와 CT를 수십장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참담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아들 녀석을 보고 있었어야하는데
며느리라는 것이 엄마보다 더 우선되는 그런 분위기에 화가 났고
아들 녀석을 열심히 보고 있지 않은 남편을 때려주고 싶었고
다시는 명절 오후에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 시댁에 남아있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다행히 턱뼈가 뿌러지지는 않았다고 하고
구강 내 출혈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자체 흡수가 될 것이라하고(시간은 오래 걸릴거라했다.)
입은 당분간 잘 안벌어지니 빨대 식사를 하라하고
세균이 발생하지 않게 항생제 등의 처치를 해주었다.
지인이 있어서 그나마 빠른 진료와 처치등이 되었고
아침 일찍 가서 사람이 없었으니 대학병원 피도로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아들은 입을 잘 벌리지 못하고 빨대 식사를 했으며
수다도 떨지 못했고 유치원도 쉬었고(얼마 지나니 심심하다 했다.)
만능 스포츠맨인 아들 녀석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종목은 철봉이 되었고
중학생때 그때의 충격으로 악관절의 균형이 맞지 않아 입이 자꾸 벌어져서 치아교정을 하게 되었고
(겸사겸사 아랫니도 삐툴삐툴이다. 시댁모두)
나는 지금도 그 충격으로 아들의 얼굴 모양이
동그란 상에서 길다란 상으로 변형되었다고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귀엽고 이쁘고 동글동글 착해보였던 아들 얼굴을 돌려다오.
명절에 다쳐서 응급실에 오는 아이들이 엄청 많다고 응급실 의사인 제자 녀석에게 들었다.
다들 술먹고 신나서 놀다가 아이들을 놓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조상님들도 그걸 원하시는건 아닐게다.
명절이라고 신난다고 주위에 사람이 많다고 누군가가 보겠지하고 육아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
축구에서도 일대일 맨마킹이 제일 효과적이다.
육아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잠시 한눈 잠깐 팔면 아이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명절 시댁에서는 제사만 지내고
곧장 친정집으로 도망가는 시스템을 강건하게 구축했다.
우리 친정집은 너무 예민할 정도로 아이 움직임을 주시한다.
자는 아이도 들여도 보는 수준이다.
절대로 어디서 머리를 다쳐서 피가 나는지를 모를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육아 담당자들이여.
힘들다는 거 잘 안다.
그래도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유모차에 아이를 넣고서 핸드폰만 하면서 기계적으로 밀고 다니면 안된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좋은 아침에 또 꼰대같은 훈수를 두었다.
그렇게 절절하게 키운 아들 녀석은 오늘 지방 출장길에 나선다.
가끔씩 길어져버린 아들의 얼굴형이 싫어질때가 있다.
그때마다 남편이 몹시도 밉다.
그래도 지금은 미워하지 않으련다.
어제 저녁 짧은 산책에도 힘이 들어하는 아픈 사람을 미워해봤자 뭐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