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포기한 구체적인 이유 다섯번째

결국은 모두가 생긴대로 사는 법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같은 제목의 글 중에서 네 번째 것의 반응이 가장 컸다.

막장드라마 비슷한 전개가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고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을것임에 틀림없지만

그 일들을 뺀 나머지 내 교직 인생도 충분히 의미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가 지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글을 쓰면서 되돌아봤지만 더 이상 분하지도 화나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글들을 쓰면서 알았다.

총 네 편의 이유보다도 승진을 포기한 더 중요한 이유는 나의 타고난 품성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태어나기를 불편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마음이 불편한 것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불편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다 비슷할테지만

나의 강도는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한 것 같다.(보기와는 다르게 예민한 편이다.)

학교에서 누군가와 혹은 무슨일이든 불편함이 감지되거나 불편한 과정이 생기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학기를 준비하면서 수업 시수를 가지고

서로 적게 하겠다고 싫은 소리가 오가면

그냥 내가 많이 하겠다고 하고 그 자리를 마무리하거나

연구 수업 할 사람이 없어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회의가 길어지면 (묵음 수행을 몹시 힘들어한다.)

그냥 제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드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승진을 하려면

치밀하게 자기 편도 만들고

다른 라이벌의 안좋은 점도 슬며시 부각시키고

나의 어려움과 고충은 엄청 크게 부풀려서 소문을 내는 등의 정치적인 행동이 조금은 뒤따라야 하는데

(살다보니 모든 삶에 정치적인 제스츄어가 필요하던데 나는 정치를 제일 싫어하고 못한다.)

나는 그런 것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와 적이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도전의식 부족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편한 삶을 추구하려 했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절실함이 부족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맞다. 그렇게 살았으니 나에게 승진이 넝쿨처럼 굴러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나는 학생들과의 수업을 너무도 좋아했다.

이 내용을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고 행복했고

무엇보다도 수업 시작시간과 끝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을 평생 원칙으로 삼았다.

높은 분들과의 회의보다도 학생과의 수업이 우선이었으며(회의중이라도 시간이 되면 나갔다.)

회식보다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방과후활동이 우선이었고(내돈 내산인데 이왕이면 학생들을 사주었다.)

수업이 하기 싫어져야 승진을 본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는데

나는 마지막 수업까지 수업이 하기 싫은 날이 없었다.

물론 몸이 아파서 수업하기가 힘든 날은 있었다만

(코로나19나 A형 독감,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와 갑상선암 수술 직후에 그랬다.)

그러니 나는 승진을 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전심전력으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나보다.

그럼 포기라고 할 수 있는것인가 싶기는 하다만.

그래도 몇번 도전할 생각을 했었으니 포기가 맞다고 해두자.


방학 일주일이 지나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수업이 하고 싶어지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랬던 사람이 지금은 어떻겠는가?

오늘 오전 연구과제 심사를 위하여 방문한

모 교육지원청은

바로 옆에 초, 중, 고등학교가 이어져 있는 특이한 위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의 체육 활동을 쳐다보며 웃고

조용하고 엄숙한(오늘은 6월 모의고사일이었다.) 고등학교 교문의 만발한 장미를 보며 웃고

중학교에서 나오는 익숙한 멜로디의 수업 끌나는 종소리를 듣고 미소지었다.

오늘의 심사 내용은 어려운 주제에(너무 어렵고 복합적인 주제인데 연구비는 쥐꼬리만하니 유찰이 될수밖에 없다.)

완성도가 느껴지지 않는 연구 계획서로(주제와 딱맞는 연구자 확보는 쉽지 않을것이지만 계획서가 너무도 구체적이지 않다.)

기분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만

나의 오늘 하루 의미 있는 쓰임새였으므로

그리고 내가 좋아라 하는 학교 냄새를 맡고 왔으므로

마치고 집에 와서는 힘을 내서 남편 환자식 밥상을 준비해본다.

오늘도 아르바이트 전화는 오지 않고 있다.

한 곳만 와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질텐데 말이다.

결국은 모든 생긴대로 자기 맞춤형으로 사는게 맞다.

이래저래 승진은 포기했지만 나의 발전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저 돌담 사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보라. 나를 조금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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