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만화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제는 지친 날이었다.
남편은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계속 연락이 되지 않고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절대 신봉하기는 한다만. 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톡 하나 남기는 것이 그리 힘든지? 아니다. 본인이 더 힘들테니 아무말 하지 않는다.)
아들 녀석은 갑자기 회사에 다급한 일이 터졌다면서 잠수이다.
(누가 부자관계 아니랄까봐 가끔 잠수한다. 주로 술을 먹으면 잠수를 탄다. 나중에 결혼하면 크게 혼날텐데...)
저녁까지 전전긍긍하며 그래도 나의 할 일을 하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오전에는 루틴대로 브런치글을 하나 쓰고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버튼을 누르기만 했다.)
대형마트로 산책을 가서 장을 보고(고양이 설이의 특식을 사러 간 것이다.)
그 사이 변한 주변 식물계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이제 누가뭐래도 여름이었다.)
오후에는 근 한달만에 커뮤니티 센터의 2,000원짜리 골프 연습을 하고(엄청 안맞았다. 맞을 리가 있나? 그리 오랜만인데... 그래도 너무 했다.)
에코 스쿨 건립을 위한 줌회의를 하고(줌 화면의 나는 왜 그리도 힘이 없고 늙어보이는 것이냐? 노트북 모니터 화질의 문제만은 아닌 듯 하다만. 입술이라도 빨갛게 발라봐야겠다. 다음에는...)
그리고 오후 브런치글을 쓰려고 들어갔더니
며칠 전 썼던 글의 조회수가 눈에 띄게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승진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쓴 시리즈였는데
그 글 하나만 조회수가 급등한 이유는 역시 알 수가 없다.
나 같으면 그 글을 읽으면 같은 제목의 다른 시리즈도 읽어볼 것 같은데 추세를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브런치글을 읽는 분들의 동향과 흐름은 아직도 파악되지 않는다.
원인은 모르지만 기분은 좋았다.
연락 없는 두 임씨 부자를 기다리면서 저녁을 준비한다.
카레도 해놓고(남편에게 싸서 보낼 예정이다.)
두툼한 달걀말이도 하고
아들을 위해서는 불고기를
남편을 위해서는 버섯을 볶는다.
항암주사를 맞고나면 악관절이 아파오는 남편을 위해서는 열무물김치를
아들 녀석을 위해서는 신김치가 되어가는 겉절이와 깍두기를 준비한다.(생김치를 싫어한다.)
그래도 다행히 비슷한 시간대에 연락없던 두 사람이 무사귀가해서
밥상을 한번만 차려도 되니 다행이다.
생각보다 소박한 사람이다. 나는.
월요일 저녁 마지막 나의 일정은 유튜브로 <불꽃야구>를 시청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8시부터 영상 업로드가 되어야는데 시간이 되어도 올라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걱정되는 이슈가 존재하는 형편이라
진땀이 나고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난 그들의 찐팬이다.
다행히 용량 관계로 업로드가 늦어진다는 공지를 봐서 그렇지 아니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정신이 없어질 뻔 했다.
매주 그렇지만 특별히 어제 방송분을 기다린 이유가 있다.
4월 14, 15일에 열렸던 비공개 직관을 지인 찬스로 직접 보러갔던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응원은 엄청 열심히 했다만.
그날 보았던 그 강렬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방송으로 꼭 보고 싶었다.
관중석에서 본 내용과 덕아웃까지를 포함한 방송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방송이 훨씬 더 재밌다.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나는 설이와 놀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 날 아침 메뉴를 준비했으니
그 시간을 허투루 쓴 것은 아니다.
9시가 되어서 유튜브 방송이 시작되고
나는 끝날때까지 침을 꼴깍 넘기며 집중한다.
결과를 알고 보는 나도 그런데 모르고 보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어제 게임은 투수가 9회까지 타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는 퍼펙트게임 편이었다.
야구만화에서나 가능한 그 일을
4월에 현장에서 직접 보았었고
6월이 되어서야 방송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그 시합 날 나는 에러를 한 개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확인하니 다 0인데
에러에 1이 기록되어 있어서였다.
그래서 경기 당일에는 노히트노런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도 너무나 대단하다면서 응원했었는데
이제 보니 상대팀의 에러가 1개라는 뜻이었다.
결과를 알고봐도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는 그 순간은 소름이 돋고 눈물이 찔끔났다.
그런데 방송으로 보니 더한 뭉클함이 있다.
대기록 달성을 위해 온 팀이 모두가 마음을 합치고 전력을 다했다는 과정을 알 수 있어서였다.
현장에서는 평소 대비 약간의 긴장감 정도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수비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더 떨면서 준비하고 간절히 원하는 그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거다.
그렇다. One Team 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요한 일은 혼자 할 수 있는게 절대 아니었다.
페펙트 게임이란 누구 하나라도 정신을 놓치면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것이고 물론 행운도 따라줘야 한다.
절대 상대팀이 못한 것이 아니다.(경북고 화이팅이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으나 간절함과 연습량과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신의 도움이 있었다.
22만 동시접속자들과 함께 대기록을 축하하고
늦은 잠에 들었다.
어제는 퍼펙트 게임을 본 퍼펙트 데이이다.
딱히 무엇 하나 멋진 기록을 세운 날은 아니지만
식구 모두 무사 귀가를 했고 더 이상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나에게도 퍼펙트 데이가 맞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 아침 일찍 선거를 마치고
양배추채 썰어 그 사이에 달걀넣은 샌드위치 만들어서
반의 반개를 먹었는데 조금 졸린다.
괜찮다. 오늘은 휴일이다.
오전에 시어머님을 뵈러 양로원에 다녀오는 일빼고는 특별한 일이 없다.
대문 사진은 다음 주 방송 예정인 <불꽃야구> 첫 직관날 사진이다.
다음 주도 재밌을 예정이다.
그러나 퍼펙트게임은 더이상 나올 수가 없다.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젯밤이 역사적이었던거다.
살다보면 가끔은 만화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