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선생님이지만 기계치입니다.

기분이 나쁩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과학 전공자과 공대생은 다르다.

공대생은 대부분 기계 친화적이지만(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만)

과학 전공자는 태생적으로 기계 친화적이지는 않고

다루어본 실험기구는 능숙하게 다루는 후천적인 일부 실험 기구 친화적이다.

모든 기계 동작과 작동원리에 두려움이 없고

관심이 많은 일반적인 공대생(특히 기계공학과)이나 공고 출신자와는 성향이 천지차이이다.

과학을 전공한 내 이야기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똥손이다.

정교하게 무언가를 손으로 하는 작업에 선천적으로 소질과 관심이 없는데다가 두려움조차 큰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 조심스럽게 여러 차례 질문과 연습을 통해서 조작 기능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무언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구나 기계를 만나면 겁부터 난다.

내가 그것을 고장낼까 싶어서이다.

비싼 기구일수록 더더욱 그 겁남의 정도는 심해진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력이 매우 나빴다.

정교한 장치들이 잘 보여야 선뜻 움직이것이 용이한데 잘 보이지가 않고

더군다나 작은 레버등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은 노안이라 더더욱 그렇다.

머리와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뭔가 매뉴얼에 따른 조작과 구동이 필요한 것과는

비슷하기는 하나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오늘 저녁 아파트 앞 주유소에서 셀프 주유를 할때의 일이다.

그 주유소는 주변보다 가격이 착한 것으로 소문나서 오후가 되면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핫플이다.

오전에 주유를 했어야는데 서류 준비 관계로 부득이하게 오후에 주유를 하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줄을 엄청 섰다가 나의 주유구 방향과는 반대인 방향으로 들어서라는 관계자의 지시를 받았다.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

일단 주유밸브가 반대편까지 길게 늘어서는지를 알 수 없었다.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늙고 힘없는 나의 손으로 그 주유밸브를 힘껏 끌어당겨보아도 간신히 주유구에 닿을까 말까이다.

자동차를 망가트릴까 겁나는 것보다도 주유구를 고장낼까봐

그래서 잘못해서 길바닥에 휘발유를 쏟을까봐가 걱정이 되고

뒤에서 대기 중인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관계자가 세게 주유밸브를 빼내더니 내 차 주유구에 쾅하고 집어넣어준다.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기분이 엄청 나쁘다.

그 관계자는 힘센 아저씨다. 나의 힘과는 대략 보아도 두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주유구 방향으로 진입하려는 나를 굳이 반대 방행으로 밀어 넣은 바로 그 아저씨이다.

셀프 주유인데 내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진입도 못하게 막더니

반대 방향으로 주유밸브를 잘못 뽑는다고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는 표정까지 짓다니..

한판 붙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참았다.

기운이 부족하고 손이 느리고 눈은 침침하고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만

똥손과 노안과 기력 부족이 조금은 화나고 많이 슬프다.

그래요. 나는 과학 선생님이지만 기계치입니다. 고백합니다.

기운이 없어서 주유밸브도 빨리 길게 못끌고

기름도 단번에 못넣어서 미안합니다.

셀프 주유 5만원 어치를 하면서 무시당하는

기분 나쁜 표정도 보고

앞으로는 바로 집앞인데 다른 주유소를 가야할까

신중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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