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무지 덥거나 비가 엄청 오거나.
어제 우이동 그린파크 수영장이 기억나면서
옛날 고리고리짝의 여름날들이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과 비슷한 뇌의 연상 작용이다.
막내 동생에게 물어봤다.
<너는 그린파크 수영장 안 갔었지?>
<그럼. 기억이 없어.>
갔으면 기억을 못할리 없다. 총명한 막내이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수영장에 가기에는 아빠 힘이 부치셨을 것이다.
엄마는 어디 나가는 것을 좋아라하지 않는 성품이시기도 했고
아마 막내는 그렇게 엄마와 집에 있었을 것이다.
안됐다. 막내의 숙명이다.
막내는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는 없다.
추억도 잔소리의 양도 나보다 작을 것이다.
그러니 나보다 두 분이 더 그리울 수도 있다.
아마도 또 막내를 빼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 갔던 기억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지명은 확실하지 않은데(아마도 강원도 양양쪽 죽도해변이었을 거다.)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에 갔었고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는 딸들을 데리고 바다에 온 아버지가 안되어 보이셨는지
밑반찬도 내어주고 혀를 끌끌 차시기도 했고 엄마는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셨었다.
그 날 저녁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꽁치김치찌개의 맛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끔 해먹을 때마다 그날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때 그 바닷가는 여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바다 비린내음이 아침마다 넘치게 났었고
고기를 잡고 들어오는 배가 보이는 그런 정감 있는 곳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바다가 주는 우울함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었다.
그전까지는 해운대 바다의 화려함과 즐거움 밖에는 몰랐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쯤의 일이다.
언젠가는 아버지랑 텐트를 치고 놀러간 적도 있었는데(어딘지는 아예 기억이 없다.)
아들이 없어서 혼자 땀을 흘리면서 오랜 시간 텐트를 치는 아버지 등이 안스러워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큰 딸인 내가 도와드린다고 옆에서 대기는 했었으나 힘으로 보나 영 마음에 차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들과 함께하는 운동이나 글램핑이나 목욕이나 등목이나 이런 것들을
아버지도 엄청 기대하고 희망하셨을 것이다만
(아버지랑 갔던 동대문야구장 야구 구경이 마지막이었다.
그 동대문야구장이 만들어진지 100년이란다. 물론 지금은 없다만)
딸만 있는 현실에 다소 많이 절망하셨을 수도 있다.
늘상 우리 엄마는 아들을 못낳았다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그때였으니 그랬을 것이다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여름이 되면 등장하는 대나무 돗자리가 있었다.
시원하고 땀이 배지 않아 한여름 낮잠 자기에는 딱이었다.
오래자면 허리가 뻐근해지고 흔적이 배기기는 했다만...
그곳에서 수박 한 입을 베어물거나 잘 저어준 미숫가루 한 모금을 머금고
책을 한 장 읽다보면(읽는 시늉만 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뒤로 당시 유행하던 팝송이 들리고 나면
오분쯤 지나서 꿀잠의 경로에 진입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대나무 돗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당장은 없지만 마트에는 많이 있다.)
수박이나 미숫가루도 있고
유튜브에 7080 팝송 모음도 널렸는데
왜 나는 누워도 누워도 꿀잠이 안오는 것이냐?
단지 더워서만은 아닌 듯하다.
여름은 더워야 맛이다.
어제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비가 오는 것보다는 더운게 낫다.
더울때는 비를 그리워했지만.
옛날 고리고리짝에도 그랬었다.
무지무지 숨이 턱 막히게 덥거나
혹은 비가 엄청 많이 오거나.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나를 달래주었다.
더운것도 딱 한 달이다.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엄마는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를 예상하지 못하신게다.
(어제 우이동 산책에서 만난 저 주전자는 그 옛날 모든 집의 필수품이었다.
막걸리도 담아먹고 보리차도 끓여먹었었다.
얼음 동동 오미자차나 미숫가루도 담겨있었다.
지금은 꽃이 담겨져 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