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짝이 없다.

이 나이에도 수양이 부족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1년에 한번 정도 돌아오는 제자들과의 골프 라운딩 날이었다.

늙은 선생님이 좋아라하는 운동을 함께 해주는 착하고 멋진 제자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도 함께 한다고 대체 휴무를 신청해 둔 상태였고

올해 골프장은 최고 수준의 멋진 곳을 두 달 전에 예약해두었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주는 너무 더워서 이렇게 더우면 힘들텐데 하고 걱정을 했었고

이번주는 비가 계속 내려서 날씨를 계속 체크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비가 많이 올 줄은 몰랐다.

아들 녀석은 더운 것보다는 비오는 게 낫겠다는 주의이지만 나는 둘 다 힘들다.

가장 좋은 환경에서 공을 쳐도 잘 될까말까의 실력이니 말이다.


오늘 아침 톡을 주고 받다가 골프장에서 비를 맞는 것도 힘들지만

이 빗속에 홍천까지 운전을 하는 것도 위험하니

다음 날씨 좋을 때 소풍삼아 가자고 취소를 선택하였다.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무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제자들도 이제 나이를 꽤 먹었다.

그런데 그 취소를 결정하자마자 비가 개고 날씨가 맑아진다.

무언가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어서 약간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냥 강행할 것을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고

괜히 손해본 것과 같은 툴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할 무렵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다.

아니다. 내가 수양이 부족하여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울산에서 하는 <불꽃야구> 직관을 구경가신 분들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렵게 티켓팅을 하고 먼 길을 찾아서 뙤약볕의 야구 구경을 나섰을때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그런데 2회가 지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우천 취소가 되었을 때의 그 마음은 또 어땠을까?

그래도 일부 열성적인 팬들은 그 비오는 야구장을 워터밤으로 만들어서 즐기는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 싶고(엄청 긍정적이다. ) 나의 수양 부족임이 틀림없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자리에 있었다면 조금은 신경질이 났을 듯하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불꽃야구>라 해도 말이다.

다행히 내가 가서 보려하는 이번 주말 직관은

고척 야구장이라 실내이니 그럴 염려는 없다.

2학기부터 바쁘고 힘들어서 직관 갈 수 없을 확률이 높으니 갈 수 있을때 할 수 있을때 응원하려한다.

비가 와도 되고 더위가 몰려와도 된다.

우리 팀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잘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겨준다면 돌아오는 일주일이 매우 신날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의 일과가 없어져서 갑자기 부여된 휴가같은 날이 되었다.

오전에는 내일까지 보낼 연구 보고서를 정리하고

친정 부모님 이천호국원 이장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현재 납골당에 이장 관련 내용을 통보하고 기타 처리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했다.)

내일 방과후 특강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과학전문서점에 방탈출 게임 예약을 확인했으며

그 동안 애정에 목말랐던 고양이 설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름 사소한 일과 함께하는 꿀맛 휴가인 셈이다.

이제부터 일주일에 진짜 중요한 일만 보러 회사에 가겠다는 남편이 집에 매일 있어서

삼시세끼를 해주어야 하니 다소 힘들기는 하다만.

아산 공장에 있을때는 못보니 걱정이 많이 되더니

이제 매일 보니 걱정 대신 짜증이 슬며시 나려고 한다.

(원래 집안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고 못하는 편이다. 어지럽히기만 한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기가 짝이 없다.

아프니 봐주고 있다.

이 나이에도 나는 수양이 부족하다.

갈고 닦고 참아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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