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임계점은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것도 노력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임계점 :

저온상에서 고온상으로 상변화를 할 때 저온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계 온도와 압력(과학의 상변화)

함수의 미분 계수가 0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점(수학의 함수)

일상생활에서의 임계점 :

마지노선이라는 의미로 종종 사용됨.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내가 참아낼 수 있는 한계점이라고 정의내림.

사람마다 영역마다 그 수치는 다 다름.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판단임.


남편이 주말 부부 생활을 반자의적으로 포기하고

집에 주로 있게 된지 일주일째이다.

아픈 사람이니 참아주자 봐주자가 나의 기본 생각이지만

그래도 못 참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그 영역은 청소와 빨래 부분이다.


남편은 원래 지독한 알뜰 스타일이다.

신혼 초 나에게 화장지를 너무 많이 뜯어 쓴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옷도, 양말도, 신발도 구입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그러니 나를 사치성이 농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양말도 빵꾸날 때까지 신고 신발도 뜯어질 때까지 신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런 알뜰한 사람이

친구에게 통 크게 카드를 빌려줘서 해외여행가서

그 카드로 거금을 쓰게 만들고(그런 나쁜 짓을 했던 친구가 얼마전에 급성당뇨로 사망했다.)

이화여대 일본어과 출신이라는 어여쁜 아가씨에 혹해서 거금을 투자해서 임씨 족보를 사오고(이화여대에 일본어과가 없다고 해도 믿지를 않았다.)

술 먹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자기가 계산을 자청하며(위암에 걸린 지금에서야 후회하고 있다.)

심지어 퍽치기에게 지갑을 통째로 헌납하기도 하였다.(눈 위도 찢어졌는데 범죄 신고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진정한 알뜰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주부인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사람은 안 바뀌어서 이번 오롯이 함께 있는 일주일 동안에도

한번 사용한 휴지를 또 쓴다고 돌돌 말아서 침대 옆 탁자에 두고

(나는 이런 일을 질색한다. 공간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바로 바로 휴지통에 넣는다.)

한번 사용한 수건을 다시 쓴다고 걸어두고(요새 같은 습한 시기에 물 냄새가 화장실에 엄청 배이게 된다.)

세탁기 전기와 물과 세제를 아낀다면서 입어서 땀이 배인 옷을 자꾸 옷장에 다시 넣는다.

(옷장 전체에 땀냄새와 습기가 배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늙은이에게 나는 냄새라는것의 근원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이 일련 과정의 자연과학적인 현상을 설명해주어도

영 못 알아듣는 듯하다.

인문계와 자연계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그 갭이 너무 소소하지만 크다.

내가 더더욱 교양으로서의 과학 원리와 문화로서의 과학의 이해를 열강해야할 목적이기도 하다.

오늘 드디어 그 임계점에 도달하여 아픈 사람을 대상으로 잔소리를 작렬하였더니

오히려 나보러 지나치게 깔끔을 떤다고 뭐라하더라.


이렇게 안맞는 게 투성인 사람들이 어떻게 만났을까?

아들 녀석은 최고의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잔소리와 당근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수 밖에...

아니면 나의 임계점이 달라지기를 바랄 수 밖에...

아직도 남편에게 눈높이 수준을 높게 잡은 나를 다잡을 수밖에...

남편이 친구를 만나러 간 사이에 옷과 양말은 깨끗이 세탁해두었는데

모자와 신발이 영 마음에 걸린다.

돌아오면 모자와 신발을 빨아 널어볼까나.

물론 필요 없다 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임계점을 넘어서려는 이 나이에도 노력은 계속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일정 궤도를 도는 것일수도 있다만.

일상생활에서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것도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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