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타란 소중한 것이다.

야구도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모두들 스타와 영웅을 꿈꾼다.

비록 한탕주의자가 아니어도 마음 속에는 조금은 그런 마음이 있다.

내가 주인공인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직장이나 학창 생활에서 모두가 슈퍼스타급으로 살수만은 없는 시스템이다.

누군가는 빛나는 조연을 해주어야 할 때가 있고

결과가 좋지 못한 일도 묵묵하게 마무리를 해주어야 할 때가 있다.

모두가 스타만 하고 싶어 하는 집단은 성공할 수가 없다.


어제 심사를 하고 든 생각이다.

발표자의 발표 스킬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발표 내용이 더 중요한 것인데 발표자의 성량, 노련함, 습관, 성실해보이는 태도 이런 것들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져보는 시간이었다.

한 곳의 발표자는 매번 발표만 맡아서 하는 프로 발표러의 느낌인데

사실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작업하지는 않은 말 그대로 관리자의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면 같이 온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 매번 그 내용을 물어보는 것에서 그렇게 판단했다.

자신이 그 일을 꿰차고 있는 것은 표시가 난다.

다른 한 곳의 발표자는 자신이 그 일을 직접 하고 꿰차고 있고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것은 맞아보였다. 혼자 왔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발표 내용이 그랬다.

그런데 발표 목소리의 톤이 너무 높았고 발표 기법이 투박했다.

아마 발표 횟수가 먼저 한 사람보다 많지 않았으리라.

대부분의 심사자들은 이럴 때 익숙함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서툴고 투박한 것은 신규 사업체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경험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의외로 투박하고 새로 도전하는 팀에게 점수가 후한 편이다만.

어제 첫 번째 발표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고 발표에만 최적화된 조력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면

두 번째 발표자는 자신이 CEO 이며 원톱 주인공이라는 것을 조금은 과하게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것이 학회에서의 연구 발표라면 전혀 다르다.

목요일 오랜만에 서울대에서 열리는 관련 학회를 다녀올 예정이다.

2학기 강의를 대비하려는 큰 목표가 있고(최신 연구 경향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작은 목표는 오랜만에 연구자들과의 눈인사와 교류이다.

신진 연구자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멋진 연구자를 찾는 매의 눈을 아직 가지고는 있으니 발표와 주제를 잘 들어보면 된다.

매번 보던 그렇고 그런 안전한 주제의 발표 말고

참신한 주제의 발표를 선호한다.

그런데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 논문을 발표할때는 무조건 자신감 있는 1인 주인공 모드로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유창하게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리 여러 명이 연구를 한다 해도 1저자는 혹은

발표 저자는 그 연구 내용 전부를 꿰차고 있는 것이 맞다.

내가 연구비를 수주해왔다고 해서 연구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 1저자를 하는 것은

법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닐지라도 연구자로서 자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저녁 약속 모임을 포기하고 집에 와서 쉰다고 쉬고 먹는다고 먹고 있는데도 기운이 영 떨어졌다.

떡볶이 야식도 시켜 먹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남편이 일주일 꼬박 집에 있다가

아산 공장에 중요한 볼 일을 보러 가고 나 혼자가 되어서 그럴수도 있다.

밥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어져서

정신력이 조금은 흐트려졌을 수도 있다.

거실에서 뒹굴거리다가 나의 월요일 마지막 미션인 <불꽃야구>의 손떨리는 연장까지 가는 승부를 보았다.

너무 열심히 몰입해서 보면 머리가 아플까봐

다른 때와는 달리 살짝살짝 딴 짓을 섞어가면서 보았다.

피말리는 한 점 싸움에서 내가 느낀 것은 수비와 희생 번트의 중요성이었다.

홈런도 1점이지만 공이 빠지는 것을 막는 것도 똑같은 1점이다.

안타도 진루타이지만 희생 번트도 1루를 더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희생 번트를 제대로 대는 선수가 많지 않다.

희생 번트는 말 그대로 나는 죽더라도 선행 주자를

한 베이스씩 보낸다는 뜻이다.

나도 살려는 욕심이 생기는 순간 그 번트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죽게 되어있다.

오히려 두 명이 죽는 최악의 병살이 될 수도 있다.

번트 말고도 희생타가 있다.

외야 멀리로 플라이볼을 보내서 3루 타자를 득점하게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이런 희생타를 고급 야구라고 한다.

내가 죽지만 팀을 살리는 것이다.

일상에서 특히 직장 생활에는 가끔 희생타를 쳐야만 하는 상황과 만날 때가 있다.

그 희생타의 기회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스타가 되는 기회는 아니지만 희생타의 기회를 살리다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다음에는 스타 탄생의 기회가 나에게 올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야구란 더더욱 그런 것이다.

나는 이제 스타 탄생의 기회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의 노력이 희생 번트가 되고 희생 플라이볼이 되어서

나의 후배와 제자들의 앞날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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