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공간이 주는 느낌이 있다.
하루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비슷한 공간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묶어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내 작업 스타일이었다.
일타쌍피 그까이거쯤은 쉽고도 쉬운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하루 한 건 처리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날이 오고 있다.
그래서 가급적 하루에 한건씩만 일을 잡으려고 하지만
오늘처럼 오기가 발동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그렇게 헤비한 일이 아니라는 조건이 붙는다.
오늘은 남대문 시장에서 새 안경을 맞추는 일이 메인이고
서브는 오래된 지인인 교사 발령동기 부부와 후암동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 부부는 후암동에서 산지 꽤 오래 되었고
연예인 수준의 바쁜 일정을 가지고 있는 분께서
마침 시간을 내주었고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가보고 싶은 후암동 맛집을 한참전에 찾아두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약속 장소인 후암시장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다.
남산도서관에서 내려 후암시장까지 걷기로 한다.
후암동은 몇 번 다녀본 경험이 있는지라 길찾기가 그다지 두렵지만은 않고
약속 시간에도 여유가 있으며
새 안경을 쓰고 나니 더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남산도서관에서 후암시장까지는 내리막 골목길을 걷게 된다.
오래된 일본식 구옥들과 주택들과 새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신축 건물들이 묘하게 어울려있는 것이
후암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이며
남산도서관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아래 주택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보았던 추억의 뷰이다.
후암시장 내부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이미 10,000보를 넘게 걸은 내 발가락과
하필 새로 구입한 신발을 신어서 더더욱 피로감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들어간 맛집은 일본식 구옥의 뼈대와 천장은 살린 채 작은 식당을 만든 곳이었고
우리는 명란오차즈케와 연어오차즈케를 먹었다.
녹찻물과 구운 명란이 어떻게 어울리겠나했는데
아주 잘 어울린다. 깔끔한 맛이다.
식사시간에도 그리고 디저트로 음료를 먹으면서도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주제와 맥락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장 힘든 이야기는 역시 아픈 사람들 이야기와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친구 부부네 강아지 이야기였다.
나도 한번 본 적이 있는 이쁘고 착한 강아지였다.
10여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를 보낸지 며칠 안된 부부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도 고양이 설이를 보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생각만으로도 눈물나려한다.)
반려 동물이 가족이라는 말을 십분 이해한다.
그들이 주인을 냄새로 기억하는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도 십분 이해한다.
아직 집에 남아있는 강아지의 흔적을 보는 것이 힘들어
집에서 나와 밥을 먹고 수영을 가고 돌아다닌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만 아쉬운 것만 기억나는 법이다.
일 년에 한번쯤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오랜 지인과의 만남의 시간도 소중하고 후암동
그 공간도 소중하다.
그래도 오늘은 두 가지 일은 처리한 날이다.
내일도 일정은 두 가지이다만
오늘처럼 즐겁고 기분 좋은 일정만은 아니다.
어떻게 기분 좋은 일만 하면서 살수가 있겠는가?
힘들지만 해야만 할 일도 있는 법이다.
내일은 그런 날이다.
(갔다와서 지하 커뮤니티센터 목욕탕에서
공식 체중계에 올라가봤더니
이번 주 맛난 것을 잘 먹어서 그런지 1Kg 살이 올랐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