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을 넘어서 과식으로
요즈음 내 관심거리 중의 한 가지는 살찌기이다.
나의 흑역사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으면 콧방귀를 뀔 것이다.
한때 나는 다이어트업계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고
S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오랜 다이어트로 인해서 영양실조라고 차트에 써있기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근육량 유지 혹은 늘리기가 목표인데
이것도 다이어트 못지않게 힘들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세상에 살찌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라고 생각했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삐쩍 마른 녀석들에게 2주일만 시간을 준다면
살을 포동포동하게 찌워주겠노라 장담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오늘 점심. 벌크업과 살찌기 그리고 근육량 늘리기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점심을 먹었다.
새 학교 동료들과의 첫 외식이다.
지금까지는 학생식당이나 도시락만 같이 먹었었는데
오늘은 학교 인근 꽤 유명한 맛집에서의 점심이다.
얼마 전 남편이 다녀와서 맛나다고 이야기했던 곳인데(남편의 미식 수준을 믿지는 못했다만)
오늘 내가 먹어보니 맛집이 틀림없다.
올해 최대치인 돌솥밥 한 그릇을 다 먹고(작은 사이즈이기는 했다) 물부어서 눌은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메인 음식은 고등어구이와 쭈구미볶음이었지만
내가 더 많이 먹은 것은 밑반찬이다.
궁채나물도 고추장아찌도 오이지무침도 오랜만에 먹은 고들빼기 김치와 커다란 사이즈의 새우젓호박나물과 빨간 감자조림까지 맛없는 것을 고를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퀄리티이니 점심시간에 줄을 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통의 요지도 아닌데 그리고 주변에 큰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찾아 찾아오는 밥 손님들이 엄청나다.
게다가 누가봐도 건강식이다.
양념 간이 센 것도 아니고 메뉴가 기름진 것도 아니다.
재방문 의사가 확실하다.
내일이라도 한번 더 먹을 수 있겠다.
이정도면 내 음식 관련 최상의 찬사이다.
옛날 정도의 양을 오랜만에 먹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못 먹은 것이 아니라
맛이 별로여서 안 먹은 것이었나 의심이 될 정도이다.
맛난 점심에
후식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얻어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회의 책상에는 한번 먹어보고 싶던 오토 김밥이 올려져있다.
그 유명한 대전 성심당의 광복절 리이티드 에디션 빵도 올려져있다.
오늘 계 탄 날이다. 내 위장이...
잘 먹으니 회의도 즐겁고 개강 대비 및 총장님과 이사장님 투어 대비 청소도 즐겁다.
초임 교사일 때 장학사의 학교 방문에 대비해서 청소를 열심히 해대던 때와
멋도 모르고 교실이 너무 더럽다고 내돈 내산으로 교실 페인트칠을 해댔던 그 시절과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런 일을 했다.
혼났어야 마땅한데 윗분들께서 생각지도 못한 내 행동에 기가 차셨는지 안 혼내셨었다.)
올해 2월까지 과학실을 쓸고 닦고 하던 날들이 스쳐갔다.
얼마전 방과후학교 특강때도 쓸고 닦았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은 내가 청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할때는 청소와 자리정리를 해야만 일의 시작이 매끄러운 사람이다.
청소를 끝내고 나서 1주차 수업 자료를 LMS 시스템에 업로드하고 나니
이제야 개강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아니다. 새로 바뀐다는 출결시스템을 확인해야 한다만 그 일은 목요일로 미루어둔다.
너무 서두르면 이번 주에 지치게 된다.
매사에 방향성도 문제지만 속도도 중요하다.
오늘의 먹거리가 나를 무한 긍정의 세계로 이끌었다.
음식이란 그런 묘한 힘이 있다.
오늘 점심은 포식을 넘어서 과식을 오랫만에 한 날로 기억될 예정이다. 함께 해준 분들께 감사하다.
다음에는 내가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