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22
다치지 맙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쳤던 경우를 쓰다 보니 교사들도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아 잠시 주말 오후 달디 단 낮잠 후 글을 이어 쓴다.
모든 공간에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학교는 동일 공간 안에 동일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니 더욱 더 그렇다.
먼저 과학교사인 내가 다친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생명과학부분의 실험에서 제일 많이 필요한 기구는 현미경이다.
현미경 실험을 하려면 관찰할 샘플로 프레파라트를 만들어야하는데 이때는 세심한 금손 능력이 필요하다.
샘플을 얇게 자르고 실험유리에 지문이 가급적 남지 않도록 올리고 슬라이드 글라스를 덮는 과정에서
이를 깨트리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실험유리는 그래도 깨진 조각이 보이는데
슬라이드 글라스는 너무 얇고 작아서 깨진 조각조차 보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절대 맨 손으로 치우면 안된다. 실험대 위는 핸드 청소기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나도(과학 실험 안전 연수 전문강사이다.)
10년 전쯤 학생이 깨트린 슬라이드 글라스를 맨 손으로 치우다가 오른쪽 새끼 손가락 끝에 유리가 박혔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보건실에 갔더니(그때까지는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 출신 보건 선생님께서 확대경까지 쓰고 살펴봐주셨지만
유리 조각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부위를 스칠 때마다 통증을 느꼈다.
근처 병원에 전화를 해봤으나 외과, 피부과에서 모두 거절당하고
(작은 유리조각은 혈액이나 혈관을 타고 이동하는 게 가능해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진료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그 사소해보이는 그 사고로 나는 근처 대학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응급실 레지던트 의사는 삼십 분 이상 나의 새끼 손가락 피부를 한 겹 벗겨내고는
정성을 다해 작은 침핀으로 피부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반응을 살폈고
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그 부분을 다시 샅샅이 훑어가는 재래식(?) 유리 제거법을 수행했다.
이제 끝났나 싶어서 밴드를 감으려면 다시 비명이 나오고 나오고를 반복한 거보니
박힌 유리가 한 조각은 아닌 듯 했다.
한참이 지나서 레지던트 의사 얼굴에서는 땀이 흐를 정도인데(6월쯤이었나보다)
나는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 느낌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더 급한 응급 환자를 내가 막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귀가했는데 그 이후로도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의 주치의(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응급 의학과 교수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시간을 내서 자신이 당직인 날 방문하라고 했다.
그 곳에서도 마찬 가지 방법의 진료를 받고(나의 수제자는 더 치밀하고 스피드있게 처치해주었다.)
그제서야 깔끔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5월이 되면 학교는 각 종 행사로 바빠진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행사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백일장, 사생대회, 소풍, 체육대회, 과학의 날 행사 등은 코로나19 이후 대폭 축소되었다.
물론 학교별로 그 현황은 다르고 구성원들마다의 미묘한 입장차가 있다.
행사를 준비하는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를 하면 꼭 다치는 교사가 나온다.
나는 10년 전 계주 달리기를 끝으로 체육대회날은 응원만 열심히 하고 있다.
마음만은 잘 달리던 옛날과 같으나 이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은 뛰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는 한다. 참아야한다.
체육대회날은
학생들의 폭발적인 응원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다가 넘어지거나
학급 회장과 손잡고 달리다가 그 스피드를 쫒아가지 못하고 미끌어지거나
학생 대표와의 피구 시합 중 공에 안면을 강타 당하거나
평소 운동이 부족했던 교사와 학생들로 보건 선생님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이 된다.
예전에는 학교 교사 대표를 뽑아 인근 학교들과 축구, 배드민턴, 배구 대회 등을 진행했다.
교사들의 사기 진작 차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행사를 하고 나면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거나 무릎에 물이 차거나 다리 인대가 끊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교사가 다치면 학교에도, 학생들에게도, 동료 교사에게도 민폐가 된다.
누군가가 수업을 대신 들어가야 하고 대체 강사를 구해야 하고
교사가 바뀌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되니까 말이다.
교사는 마음놓고 아프기도 힘들다.
병가가 있지만 대체 강사를 구하기 전까지는 좌불 안석이 된다.
코로나19 시기에 많은 교사들은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했었다.
내가 코로나 19에 걸렸을때 나도 정신이 났을 때는 계속 걱정했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아프긴했지만...
내가 자리비울 1주일이 얼마나 동료들에게 부담이 될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온 날 미끄러지셨다는 동아리 강사님이 계셨다.
많이 다치셔서 수술도 하고 재활도 하고 도저히 학교에 나오실 수 없는 상태라
급히 다시 강사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본인은 다쳐서 속상하고 아프고 학교에는 미안하게 되는 셈이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안가지셔도 된다 회복에만 힘쓰시라 말씀드려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픈 것은 할 수 없다고 해도 다치는 것은 최소로 줄었으면 좋겠다.
안전한 공간과 안전한 삶을 위한 서로의 노력.
그것도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 중의 한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