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날때는 돈을 쓴다.

맛난거 먹고 도톰한 바지 샀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잠을 심하게 설쳤다.

한 시간만에 깨다 다시 억지로 눈을 감다를 반복했다.

동생이 또 입원중이리는게 마음에 걸렸을수도 있고

무릎이 괜찮은것 같으니 다른 곳이 하나 둘 쑤시는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일찍 일어난김에 다음 주 강의안을 확정해두고

(그래도 내일 또 무언가를 추가할지도 모른다만)

남편 아침용 올리브오일에 토마토 굽고

계란풀어 볶음 만들면서 봤더니

어젯밤 안보이던 거실 바닥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어제 내가 강의하러 간 사이에 무슨 사단이 난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고보니 남편용 실내화가 안보이고

아들 녀석것을 신고 있더라.

어제 무언가의 액체를 쏟았고

그게 가죽 실내화와 거실에 널부려졌음을 추론할수 있

무엇을 얼만큼 어디에 쏟았는지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기가 완벽하게 치우고 정리했는데

웬말이 많냐는 표정이다.

더 이야기해봤자 나만 까다롭고 예민한 나쁜 여자가 되니 입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남편이 친구들과 만난다고 집을 나선 후 과학수사를 재개한다.

가죽 슬리퍼를 물로 빨아서는 침대 밑에 숨겨두었고

(세상에 물휴지를 쓰면 되는데 가죽을 물로 왜 빠는거냐?쪼글거려서 회생이 될럴지는 모르겠다.)

바닥에는 뭘 흘린것인지 사방에 끈끈한 점들이 보이며

콧털과 수염깍은 가루를 세면대에 그대로 버려두어

물이 내려가지도 않게 만들어놓고

아니 그걸 화장지에 잘 싸서 휴지통에 버려주는게 그리 어렵나?

(원래 잘 안내려갔다고 핑계를 댈것이다만)

변기 사방의 튄 흔적과 욕조에 묻은 땟자욱은 내 눈에만 보이는게 틀림없다.

(내 시력도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된다.)

집안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기딴에는 내 힘을 빌지않고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 점이 제일 큰 문제이다.

그 시대의 남자들이 다 그런것은 절대 아닐테지만

아무일도 가르치지도 시키지도 않고

생선가시까지 발라줘가며

곱게만 키우신 시어머님 잘못이 제일 크다.

더구나 시력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는 사실이 또 크다.

군대만 다녀왔어도 저렇지는 않을거다.


화가 부글부글나서

청소를 끝내고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에코스쿨 연구자료에 넣을 도시재생 사례 사진을 몇 장 찍고(열린 송현광장 멋지더라.)

나를 위로하기 위한 소울푸드를 홀린듯 흡입한다.

옛 사직동 살던때의 순대국밥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딱이다.

약간은 작은 양이 나에게는 딱 좋고

고기 두께가 얇고 국물의 탁한 정도도 알맞은

기력없고 화가 솟구치는 나를 달래주기에 딱이었다.

오늘에서야 그 식당 이름을 정확히 알았다.

그리고는 그 옆 단골 옷집에서

멋쟁이 소라색 일자 골덴바지와

브라운색 앏은 기모가 들어간 와이드 팬츠를 하나 샀다.

서울을 떠난다는 말을 사장님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분기별로 한번쯤 찾아가니 지금이나 다를바 없을것이고

나는 올 동절기 의상은 오늘로 확보 끝이다.

배 든든하고 맘에 드는 옷가방을 손에 들으니

남편에게 아무 말도 안할수 있을것 같다.

말한다고 달라질것이 없다는게 제일 큰 이유이긴 하다만.

아들 잘 키워야한다.

집안일은 함께 하는게 맞다.

요새 젊은 부부처럼 엑셀을 써서 1/N 로 반 가르기는 못할지언정 독박은 너무하다.

나는 가정부나 파출부나 청소부가 아니다.

누구나 태어날때부터 가사노동이 취미인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