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행운도 찾아온다.

정동길의 랍스타

by 태생적 오지라퍼

회의 시간 30분 전에 교육청 근처에 도착했다.

차를 한잔 마시면서 머리 정리를 할까

아니면 근처를 걸어볼까하다가

회의를 하면서 차를 마실 듯하여 걷기를 선택한다.

근처 기상박물관을 돌아본다.

오래전 정동에 위치한 학교 근무 당시 학생들과 함께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서울지역에 벚꽃이 개화했다던가 단풍이 들었다던가 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목이 있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인 셈이다.

무릎이 부상 중인데 언덕길이었다는 점만 빼고는

멋진 하늘과 뷰가 만족스러운 삼십분의 산책이었고

아직 단풍 표준목에는 단풍이 1도 들지 않았다.

올해 서울에서 이쁜 단풍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오전에 교육청 차원의 자그마한 연구 용역 관련 미팅이 있었다.

예산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지

해야할 일이나 나의 부담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나를 믿고 맡겨주겠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덥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뒤에는 함께할 든든한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언가의 연구를 수행한 것의 7할은 네트워크와 워킹그룹의 힘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란 많지 않다.

다행이다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해두었는데 드디어 일거리가 하나 생겼다.

한번 해보고 계속 할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를 결정해보겠다.

안해보고서 포기하는 것보다 나은 것 아니겠나.

해보는 거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구 행운이다.


그리고는 연구 내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겸 고등학교의 생태전환교육의 현황도 파악할 겸

정동의 명문 이화여고가 자랑하는 최고의 선생님과 만나

멋진 정동뷰가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8층 교사 식당에서 랍스터 중식을 먹었다.

세상에나 학교 급식에 랍스터라니.

학생들도 물론 동일한 메뉴이다.

하필 내가 방문한 그날에 말이다.

아마 1년에 딱 한번 제공되는 날일거고

그날 점심에 그 학교를 방문하는 이런 행운은 흔치않다.

그리고 탄소중립 관련 연구의 좋은 시사점도 들었으니 럭키비키이다.

역시 똑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얻는 것도 많고 기분도 좋아진다.

행운이다.

마침 점심 시간에 그 선생님의 수업이 비었다는게 말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정동길의 이화여고 교정은

내가 가본 고등학교 중 원탑이다.

웬만한 대학교보다 낫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역까지의 정동길은

마침 1년에 한번 하는 문화축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한번씩 열리는 축제 첫 날이라

연주도 공연도 시장도 체험부스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동길이 주는 안온함과 익숙함이 나에게는 있다.

내 손목에는 단골집에서 구입한 마음에 쏙드는

색끈으로 된 실버 팔찌도 있

는 부르고 하늘은 높고 구름과 풍선은 멋지고

정동길에서 즐거웠던 날들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길에는 점심 후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주위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아직 반팔 차림의 젊은이들과 경량 패딩의 사람들로 옷차림은 다양하다만

다들 가을의 정동길을 즐기는 표정으로 얼굴이 환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인것처럼 자연스럽게 정동길을 돌다가 집에 왔더니 그제서야 현실이 자각된다.

이삿짐센터 예약을 하고(견적봐주는 분께

집이 깨끗하다고 특 A급이라고 칭찬받기는 했다만)

이제 서울을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괜찮다.

서울에 올 일은 앞으로도 제법 많을 것이고

나는 제주 한달살기를 하는 마음으로

학기 중과 방학 기간을 구분하여 살아볼 예정이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오늘 지금까지는 행운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지도 못한 행운도 찾아온다.

그래야 또 살만해지지 않겠는가?

당분간 버틸 힘이 생긴 것 같다.

이것이 오랫만에 먹은 랍스타의 힘일지도 모른다만.

(오늘 이전에 언제 먹었었는지 기억도 나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