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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Jan 11. 2022

중심 잡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양한 양상을 띄는 가족 형태를 그린 미국의 모큐멘터리(mocumentary, 허구의 상황이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르) 코미디 드라마 <Modern Family>에는 제이(Jay)와 글로리아(Gloria) 부부가 등장합니다.


 성공한 사업가로 상당한 재산을 가진 제이(Jay)는 이혼 후, 자신의 친딸 클레어(Claire)와 나이가 엇비슷한 콜롬비아 출신의 여성 글로리아(Gloria)와 이제 막 결혼을 해서 신혼생활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제이(Jay)와 글로리아(Gloria)의 결혼 생에는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죠. 바로 글로리아(Gloria)와 그녀의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매니(Manny)입니다.  


 신혼의 기분을 만끽하고팠던 제이(Jay)에게 아직은 어린 매니(Manny)가 마냥 마음에 들지만은 않습니다. 모성애 강한 글로리아(Gloria)에겐 언제나 남편인 제이(Jay)보다 아들 매니(Manny)가 우선이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제이(Jay)와 글로리아(Gloria) 부부가 오랜만에 데이트에 나서기로 합니다. 매니(Manny)가 친아빠와 디즈니랜드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맞은 데이트를 앞둔 상황에서 제이(Jay)와 글로리아(Gloria)는 인터뷰를 나누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201747258287815183/


Gloria:

매니의 친아빠가 며칠간 디즈니랜드에 데려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와인 컨트리에 가기로 했죠!!! 와인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할 생각이에요!

Manny's father is taking him for a couple of days to Disneyland, so we're gonna go...to the wine country! We're gonna drink some wine, eat some good food.

Jay:

매니가 있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해볼 작정이에요.
 
We would do something like this a lot more often if it wasn't for Manny

Gloria:

매니가 있는 건 좋은 일이죠. 매니는 우리의 중심을 잡아주거든요!
 
It's good. He keeps us grounded

Jay:

마치 공항에 펼쳐진 안개처럼 말이죠....
 
Like a fog at airport.


Modern Family Season 1 Episode2 "The Bicycle Thief"


 글로리아(Gloria)는 매니(Manny)를 떠올리며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매니는 우리의 중심을 잡아줘요 (He keeps us grounded.)"


하지만 제이(Jay)는 유머스럽게 이를 받아칩니다. 제이(Jay)는 매니(Manny)를 '비행기 이륙을 지연시키는 안개 (Like a fog at airport)'로 묘사하며 신혼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을 못내 아쉬워할 따름입니다. 'ground'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의 차이를 이용해 표현하는 방식은 충분히 기발한 유머코드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뜬금없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중심을 잡아준다"


"Keep us controlled" 혹은 "Keep us balanced"가 아니라 왜 하필 "Keep us grounded""중심을 잡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흔히 '중심을 잡는다'라고 하면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탄다거나 평균대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리아(Gloria)는 제 생각과는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무언가에 의지한 채 바로 서는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1454468/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이전에 관람했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 2013)>였습니다. 지구 생활에 염증을 느껴, 허블 우주 망원경 수리를 담당하는 우주 탐사 업무를 맡았던 라이언 스톤(Ryan Stone) 박사가, 인공위성이 폭파되는 사고로 인해 우주 공간에서 벌이는 생존 사투는 결국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지구의 땅을 디디면서 끝이 납니다. 우주의 진공 속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던 그녀는 지구의 중력으로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죠.


 흔히 자립이라고 하면 홀로 서서 스스로 뭐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홀로 섰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빌 곳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무너지지 않도록 발버둥 치는 삶을 영위해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기대는 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란 그렇게 무언가에 의지한 채 중심을 찾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스스로를 가두는 위험한 생각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되었든 당신의 삶과 언제나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2022.01.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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