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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May 05. 2023

첫 출근

 충무로에는 인쇄골목이라 불리는 인쇄관련 업체 단지가 있다. 단지라고 하기엔 정비가 되지 않은 골목들과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곳일 뿐이지만 수십년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길건너 하늘 높이 치솟은 대기업 건물들을 맞대고 어디가 어딘지 구분되지 않는 한없이 낮은 건물들이 버티고 선 곳이었다. 


 첫 출근날 평소하던 새벽 아르바이트를 조금 일찍 마치고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7번 출구로 가서 쭉 가다고 우회전 그리고 바로 좌회전 그리고 몇 걸음 더 가서 우회...."


도통 뭔소리인지 모르겠는 말을 뒤로하고 지도 어플을 따라 걸어갔다. 내가 지나온 길이 기억나지 않을만큼 길을 구불구불하고 건물들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인쇄골목에 들어서자 마자 시끄러운 기계소리와 컴프레셔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잿빛 건물들이 맑은 하늘마저 거무칙칙하게 만드는 골목 한편에 문 틈새를 황갈색 접착테이프로 메운 목형집이 보였다. 밝은 주광색 형광등이 켜진 곳이었다. 내가 일하게 될 곳이었다. 나름 사무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 친인척 분이 계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를 알아본 친인척은 반가우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섞인 채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안하겠다더니 무슨 일로 하겠다고 한거야" 


일전의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던 나를 의심스러워하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하지만 떠밀려 왔다고 말할 수 없는 법. 그래도 거짓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뭐, 제가 당장에 할 수 있는 거도 없었고, 사람이 안구해진다고 하시니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내가 본격적으로 일할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이라 해봤자 사무실 공간과 벽 하나로 구분된 곳이었다. 다만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골목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 좁은 골목에 오토바이들까지 주차되어있어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일단 오늘은 그냥 일하는 걸 지켜봐. 옷은 저기다 걸어두고"


 공장이라 불리는 곳에는 커다란 레이저 기계와 허리춤 높이에 마련된 철판과 망치 그리고 동그랗게 말린 칼들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나무 탄 냄새가 났고 먼지가 구석구석 가득 쌓여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내 또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터라 정확히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호의가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고개 돌려) 안녕하세요!"


용기내어 평소보다 힘을 주어 인사를 했다. 이제 정말 발을 내딛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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