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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Dec 02. 2021

오! 나의 미술 선생님


나의 미술 연대기


 그때부터였습니다. 미술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도화지 하나로 평가받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시간이었고, 시간에 사로잡힌 내가 아니라 시간을 유영하는 내가 존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미술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게 된 미술 선생님이 그렇게 저를 설득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미술 실기활동을 하면 항상 최하점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엉성했고, 공예는 투박했으며, 자유 활동은 창의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손에 바짝 힘을 주어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며 힘들여 덧칠을 하고, 두터운 손으로 풀을 덕지덕지 묻혀가며 세세한 장식을 조심스레 만들어가고 무엇을 만들지를 나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좌절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학급 게시판에 고정핀으로 달려있는 점수만이 저를 표현할 뿐이었습니다. 


 "미술에 재능이 없기 때문에 미술 실기는 절대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라는 관념을 스스로 새겨갔습니다. 이제 미술은 제가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되었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누군가의 작품세계라는 동경보다는 비생산적인 활동이라는 조롱으로 미술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잘하는 것은 유별난 것이라 여기며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이제는 중학생 딱지를 떼고 진학한 고등학교, 처음으로 받은 고등학교 1학년 시간표에는 미술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대학입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미술 교육까지 받는 게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미술시간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을 빼야 하나?" 하는 볼멘소리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미술과목이 입시에서 비중이 적다는 점을 생각하며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고등학교 첫 미술시간,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짓는 미술 선생님. 이제껏 만났던 미술 선생님들과는 뭔가 달라 보입니다.


일상 속에 스며든 미술


   수업의 첫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재료비를 일괄로 걷어 1년 치 미술 재료를 구비하여 진행할 예정이니 준비물을 따로 챙겨 올 필요가 없다는 내용과 더불어 다른 건물에 위치한 미술실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수업방식에 대한 소개 PPT 슬라이드가 끝이나자 뜬금없는 사진 한 장이 다음 슬라이드로 삽입된 채 프로젝터에 나타났습니다. 미술 선생님이 때가 되었다는 표정으로 호흡을 한 번 가다듬으며 자신에 찬 미소를 다시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이 사진 어떻게 보이시나요?"


잘 정비된 회색빛 도로에서 건장한 체구의 남성들이 도로변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위아래 코발트블루 색의 옷을 입고, 역시나 푸른색을 띠는 가재도구를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이 비운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치 역시 같은 파란색 계열의 것이었습니다.


"도로변에서 환경미화를 하는 이분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지 않나요?"


선생님이 보여주신 사진 한 장에는 '푸른색을 한껏 휘감은 채, 생기 있는 도시의 일부로 스며들어간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회색빛 보도블럭과 건물들이 조성된 도시 속 바쁜 아침을 맞이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나 선명하고 조화롭게 어울린 미화원들의 풍경이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그것은 미술 선생님이 여행을 다니던 중에 발견하고 직접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른 새벽과 늦은 새벽 한껏 오물이 묻은 형광빛 옷과 검게 그을린 환경미화원 분들의 낯빛이 철저히 배제되었지만, 이곳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게 그 풍경을 채색하는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의상도 그 색상을 어떻게 고민하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할지를 고민하면 일상에서도 굉장한 풍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곳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처럼 말이죠."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술이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은 제가 이제껏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저 작은 도화지 혹은 하드보드지로 만들어 내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만들고 융화시키는 것, 그리고 실현해내는 것. 너무나 고상하고 아름다운 무언가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서 당시 서울시의 슬로건이었던 '디자인 서울'이야기를 이어나가셨습니다. 서울의 상징 동물인 '해치'이야기부터 고궁 그리고 거대 조형물과 DDP(동대문 디지털 플라자)같은 랜드마크 등 당시 '공공 디자인 사업'이 사회에 끼치는 중요한 역할을 설명해주셨고, 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성북구 성곽길을 소개해주시면서는 북한산과 성곽 그리고 주택가가 이루는 '한국적인 풍경'을 한껏 고양된 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말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와서 그 세세한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제가 느꼈던 번뜩임은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 미술 실기 활동시간이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실까? 궁금해졌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예술


 고등학교 미술실은 6개의 커다란 검은 돌 책상이 놓여있었고, 각자 번호에 따라 6~7명의 학생들이 조를 이루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여전히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할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신감이 넘쳐서 저도 모르게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실기 활동이 중학교 시절 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기초적인 그리기도 있었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수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술 선생님은 조금 특별하셨습니다. 미술 활동에 집중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오셨고, 그 투박하고 서툰 대답들을 나름대로 진중하게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 거야?······" 

"어떤 것을 그리려고/만드려고 하는 거야?"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거니?······"

"다르게 표현해 볼 생각은 안 해본 거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


 사실 가는 대로 그리고 집히는 대로 만들어가던 저에게 이런 질문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지만, 미술이라는 활동을 꽤나 진지하게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단번에 대답하지 못했고, "음..... 어...... 뭐랄까......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닌데....... 같은 허사(虛辭, filling words)"로 당황해할 뿐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 지를.


  항상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조금 더 이끌어내 보고 싶다는 태도로 학생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각들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기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단어를 툭툭 던지시면서 그것을 함께 찾아가 주시기도 하셨죠. 그리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되게 좋은 생각 같아" 


 그 세세한 내용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을 갖는 날이면, 뭔가 몸속 어느 한 곳이 따듯해지면서 한 껏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스스로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득의감 같은 게 생겼다랄까? 그랬습니다. 수많은 저작들을 살피고,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보셨을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정말로 형편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술 선생님은 '보기 좋은'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탄생한' 결과물인지를 보려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희에게 '태도'를 가르쳐주시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미술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었죠. 그 모든 것이 예술 그 자체라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의미' 하나로 모든 것을 치부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엉성해진다 싶으면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분이기도 하셨고, 무엇보다 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지다보니 평가를 피할 수 없게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미적 가치를 갖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평가가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선생님이 그간 보여주신 모습이었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조금 아쉬울 땐 있었습니다.ㅠㅠ)


오롯이 나에 집중하는 시간


 이제 미술시간이 너무 편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해내면 선생님께서 유추하려고 하셨으니까요. 점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고민하고 표현해보는 그 시간이 저에게 소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항상 남에게 어떻게 평가받을 지만을 숱하게 고민했던 그 시절 제가 처음으로 저 스스로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한참이 지나서야 글로 남기게 된 것도 어쩌면 다시금 남들에게 비치는 모습에 매몰되어가는 나 자신을 자각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했던 미술수업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제 마지막 미술 수업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 선생님께서는 학교를 떠나셨습니다.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본인의 학업을 위해 유학을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굉장히 섭섭했습니다. 사실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을 뿐인데, 어떤 연결감각 같은 것이 저에게 남아있었습니다. 실상은 제 이름도 잘 모르실 텐데 말이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미술 선생님을 오랜 시간 잊고 지냈습니다. 문득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실지 궁금해집니다. 오! 선생님, 나의 미술 선생님.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당신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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