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결과
"저는 이~~~ 렇게까지 설명했는데, 고객사가 못 알아들어요. 미치겠어요."
"아니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저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인 거지."
"도대체 왜 저렇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어요. 어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그럼 도대체 제가 어떻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거예요?"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 소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니까요.
상황에 맞는 소통을 할 줄 아는 것은 인정해줘야 하는 '능력'이 되어버렸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질책과 야유를 받기 십상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면서 어떤 일을 또 해나간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것쯤이야 내겐 문제없다면서 함부로 다가갔다가 고슴도치의 가시가 제대로 박혀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도 여럿 봤습니다. 아예 인생이 바뀌어버린 분도 계시고요.
왜 그런 걸까요? 원칙이 정말 존재할까요?
축구경기를 할 때 보면 의도적으로 한 반칙 같아 보이지 않는데 위험하거나 무모한 도전을 하면
퇴장을 주거나 옐로 카드를 주는 경우,
의도가 어찌 되었든, 고의든, 아니든 위험하면 반칙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 운영이 축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지속적인 문제가 생기면 원칙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가장 많은 소통이 벌어지는 이곳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결과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경우에 혼란을 가중시키며 서로에게는 상처만 남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소통에는 '화자'와 '청자'가 존재합니다.
화자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청자에게 대화를 시도합니다.
청자는 다들 아시다시피 듣는 입장이지요.
어떤 경우든 사람은 본인의 경험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깔대로 이야기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성격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경유, 어떠한 상황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어떠한 의도가 담기기도 하고, 팩트만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원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저에게도 너무 어려운 주제의 문제였습니다. 모든 소통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기에
소통 간에 문제가 생기면 원래도 조율하고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무진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이슈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만 했고, 이는 제 몫이었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애매한 순간들이 많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개발해야 하는지 고객에게 이 정도로 설명했어요. 보세요. 엄청 디테일하잖아요."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자세히 설명해요? 이건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잖아요. 솔직히."
"저는 그런 의도로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제 이야기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도통 어떤 것에 상처받고 저와 말을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분은 저도 나빴는데 말이죠."
"그냥 제가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저를 괴롭히는 거 아닐까요?"
소통을 하는 데에는 서로 간의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건 친구 간의 관계든, 가족 간의 관계든, 회사 동료의 관계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동료 간의 관계, 혹은 고객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일과 관련된 것이기에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소통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면 일단 기준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통에서의 기준은 '청자'입니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들었느냐, 어떻게 느꼈느냐가 항상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그런 이야기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내가 배려를 베풀었으나, 상대방이 배려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배려일 수 없다.
100% 동의하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생활에서의 소통에서 이는 지극히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방식과 어투, 어조, 뉘앙스 모두 화자 기준으로 하지요.
그런데 청자는 화자가 말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화자의 기준이 또 있을 테니까요.
화자는 청자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화자가 의도한 대로 청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부분 의아해합니다.
혹은 화를 내는 경우도 있고, 굉장히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겠지요.
소통의 경우를 모두 다 나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어긋난 소통의 결과로 오해가 생겼다면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야기해야만 했던 화자가 청자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해결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감정만 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화자가 어떤 '의도'가 있었거나 '뉘앙스'가 들어있는 상태로 청자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청자가 화자의 의도나 뉘앙스대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화자의 잘못입니다.
청자에게 그 의도와 뉘앙스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알아들을 때까지 전달해야 합니다.
만약 화자가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여 청자가 이를 이해하게끔 만들고자 이야기를 했는데
청자가 화자가 전달하고자 한 정보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마찬가지로
이것은 화자의 잘못입니다.
특히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 정확하게든, 이해가 되게 끔이든 화자는 청자에게 맞춤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잘 모르겠다면 소통을 하면서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고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제가 설명드린 것을 다시 한번 저에게 설명해봐 주시겠어요?
만약 이해가 안 되셨을 수 있으니 그렇다면 제가 다시 설명드릴게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억울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화자의 입장이니까요.
지금은 내가 화자의 입장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당연히 청자인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상황은 늘 바뀌고 서로 간의 입장도 바뀌기에 억울해하기보다는 서로 간의 소통이 더 빨라지고 정확해질 수 있도록 이 원칙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합니다.
소통의 원칙과 기준은 '청자'이다.
꼭 소통을 하고 나면 물어봐주세요.
이해가 됐는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내 의도가 잘 전달이 됐는지
확인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소통의 작업이 잘 되지 않았다면 화자의 입장에서 소통을 제대로 다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도 결국 나를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기도 합니다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내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내가 어디에서든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대단한 '능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질문에 답이 제대로 오지 않는 경우도 대단히 많이 있고,
기본적으로 대화에 많은 의미와 의도 등을 함축하여 전달하는 대화 방식들이 많이 있기에 이해하기 어렵고,
그로 인하여 소통에 오류가 생겨서 대화만 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것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고, 답답하며 이 사람과 나는 같이 일을 하기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지요.
어쩌면 그것은 화자가 나인 경우에는 나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상대방이 이해력이 좋지 않아서, 내 말을 잘 못 알아 들어서,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아서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야기하고자 한 사람은 청자가 알아듣게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저도 항상 그래서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네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도 명확하게 이해했는지
늘 화자에게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제가 화자일 때에는 붙잡고 이야기만 하느라 몇 시간을 청자와 함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점점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고, 서로 간의 신뢰도 쌓아주며 소통의 방식도 알려줍니다.
처음에는 내가 화자인 경우 억울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도 잘 되지 않지만,
시도해 보고 먹히는 순간이 오는 것을 깨닫는 느낌은 아마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소통으로 고생하는, 오해가 생겨 관계도 어려워지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겪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추천드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소통의 원칙'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살골도 골입니다.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살인도 살인입니다.
늘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한 번쯤 '남의 귀에 들어가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을 조금 더 가지고 해 보세요.
남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아마 달라지고 유려해질 겁니다.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소통이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