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망상과도 같다
어떤 조직에서든 화두에 오르는 단골손님인 질문.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격을 바꾼다는 것인지, 능력을 바꾼다는 것인지, 성향을 바꾼다는 것인지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할 것입니다.
일단, 결론을 내는 것을 뒤로한 채, 사람을 바꾸고자 한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운데 남을 바꾸라니요. 당치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나에게 이런 업무가 주어진다면, 이런 역할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이것도 참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방송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남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과에서는 망상이라고 부릅니다."
100% 동의합니다.
결론은 "내가 바꿀 수 없다."로 하겠습니다.
이 또한, 저의 경험에서 하는 이야기이니 정답이 아닌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포기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요?
저는 "포기"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려놓음" 혹은 "인정"이라고 해두고 싶습니다.
놓아주어야 합니다. 내 "욕심"에서 나오는 "오만"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현실에서는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상황들입니다.
사람을 바꾸고 싶은 경우는 많습니다.
일을 못하는 사람
성격이 지랄 맞은 사람
말을 밉게 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행동이 모난 사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위와 같은 요소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이처럼 지옥 같은 상황도 없을 것입니다.
이 순간, 나에게 있어 지상 최대의 과제는 "이 사람을 한 번 바꿔보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금방 좌절을 맛보게 되고 그 끝은 술자리에서 그 사람 욕이 되겠지요.
좋을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접근해보고자 했습니다.
결국 누군가 바뀌었다면, 그 사람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이는 그 사람, 본인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만약 내 아내가 늘 나와 다투다가 아내가 변했다면 그건 내가 바꾼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내가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그 결실을 맺은 것일 겁니다.
결국, 그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스스로 변화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또 다른 전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변화는 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또 사람에 대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엔
실제로 변화할 수 있는 상황을 최선을 다해서 세팅해 주고 지켜보는 방법밖에는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나름대로 성과이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는 또 다른 성과입니다.
먼저 변화할 수 있는 상황을 세팅해 주는 것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이해하기 쉽도록 "변화"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통일하겠습니다.
이미 "성장"해낸 사람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환경 세팅해 주기
본인이 "성장"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직접 요청하는 부분 만들어주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하지만 타이트한" 시간 마련해 주기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우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바로 잡아주기
"성장"을 위한 노력 가운데에 필요해 보이는 요소 피드백 해주기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와중에는 타이트하게 붙어서 관리해 주기
"성장"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중에는 "진심"으로 응원해 주기
어쩌면 당연하고도 유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변화가 필요한 사람을 지켜보면서
위와 같은 요소들을 나 또한 지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내가 더 "성장"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니,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스스로 성장을 이룩해 내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적입니다.
필수적인 만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은 꽤 길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투자한 만큼 더 기대를 하기 마련이고 희망고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보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보면.."
여기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의 가치와 그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는 같습니다.
주의할 점은 "한 번"의 기회가 끝났는데 그 사람이 "성장"하지 못했을 경우에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내가 최선을 다하여 환경 세팅을 해준 것이 맞을까
이런 고민들은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직장 내에서 만나게 되는 서로에게 우리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이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사람은 보통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끝없는 사랑과 희생을 아낌없이 주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단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이며
누구나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을 해내어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맞습니다.
뽑았으니, 채용도 회사의 선택으로 한 것이니 그 책임도 다 해야 한다는 궤변은 듣지 마세요.
그런 이야기로 고통받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회사는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자 기회입니다.
물론, 회사가 말도 안 되는 것을 강요하거나, 말도 안 되는 업무가 주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회사일 경우 위와 같은 이야기는 성립됩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 계신 분들이 고통받으실 이유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으로 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없을 테고, 정량적으로 측정되는 무언가의 기준은 없을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사람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느낌"이 적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일도 잘하고, 괜찮은 사람일 것입니다."
"아닌 것 같은 사람은 어떤 환경을 세팅해 줘도, 무수히 많은 기회와 시간을 주어도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을 안타깝게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미련 없이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신 후에 더 안타까워할 시간을 다른 동료에게 쓰시면 됩니다.
그 노력과 시간은 나의 상처와 아쉬움에 위안이 될 것이고, 다른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해 고통받는 만큼 결과가 그 사람의 "성장"으로 반드시 오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불공평해서라기보다는 사람이 다 다르고 그만큼 복잡한 존재여서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상처받고 고통받으셨나요?
그만하면 됐습니다. 이제는 놓아주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놓아주셔도 괜찮습니다.